[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1년간 투병생활을 한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뜻에 따라 평화롭게 영면했다는 후문이다. 고인은 23년간 LG를 이끌며 정도경영을 표방했으며, 90년대 후반 이차전지 불모지인 국내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 LG화학 전성시대를 이끌었으며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ICT 인프라 확장에도 집중했다.

이제 재계의 관심은 LG 4.0 시대의 향배로 집중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상무가 LG의 간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다양한 승계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 구광모 상무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출처=LG

구광모 상무, 관심집중

LG그룹은 구광모 LG전자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 상무를 (주)LG 사내이사로 내정했다. 6월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구 상무를 사내이사로 확정할 방침이다.

현재 LG는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 실무를 이끌고 있지만 구 상무가 (주)LG의 사내이사로 내정되는 등, 경영승계는 구본준 부회장에서 구 상무로 매끄럽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LG의 유교경영에 따른 절차와 LG가 걸어온 길을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LG그룹의 구인회 창업주는 1969년 가을에 병을 얻어 그해 12월 31일 향년 6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LG는 구인회 창업주의 장례식을 치른 후 1월 6일 시무식을 열어 창업주의 장자인 구자경 부사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형인 구인회 창업주의 상태가 날로 악화되는 시기 동생들과 조카들을 불러 자기는 경영승계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창업주의 아들인 구자경 부사장이 그룹을 맡아야 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LG의 ‘장자승계’ 원칙이 자리 잡은 배경이다.

구자경 회장에서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구도도 깔끔했다. 1995년 2월 구자경 회장은 나이 70이 되는 해 경영권을 당시 50대인 장자 구본무 부회장에게 넘겼다. 장자승계원칙에 칠순은퇴라는 원칙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칠순은퇴 원칙은 깨졌다.

재계는 구광모 상무 경영체제가 빠르게 펼쳐질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당분간 부회장 등의 진급은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차분하게 승계작업을 거쳐 새로운 체계를 구축할 전망이다.

LG는 “구광모 상무는 오너가이지만 충분한 경영 훈련 과정을 거치는 LG의 인사원칙과 전통에 따라 지금까지 전략부문에서, 사업책임자로서 역할을 직접 수행하며 경영 역량을 쌓아 왔다”고 밝혔다.

구본무 회장은 2003년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하고 중량감 있는 경영진을 길러냈다. 하현회 (주)LG 부회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이다. 이들 6명의 부회장과 전문 경영인들이 구광모 상무를 도와 LG 4.0 시대의 핵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구본준 부회장과 6인의 경영인들이 구 상무의 홀로서기를 도운 후, LG가(家) 전통에 따라 구본준 부회장이 자연스럽게 독립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구광모 상무가 LG 4.0 시대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구광모 상무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가 재벌가에 속해 있으면서도 별다른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탈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면서 “인화의 가치를 계승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탁월한 인사”라고 말했다.

문제는 경영능력 입증이다. 구 상무는 올해 40세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 2007년 재경부문 과장을 거쳐 2014년 HA사업본부 부장을 역임했다. 이어 2014년 (주)LG로 넘어와 시너지팀 부장을 거쳐 2017년 경영전략팀 상무에 올랐으나 경영승계를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이 길게는 20년간 경영수업을 받은 후 사령탑에 올랐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안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구광모 상무는 12년간 LG에서 일했으나 대부분 일선 현장 업무다.

2017년 11월 인사이동에서 상무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LG전자의 신성장사업 중 하나인 B2B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았고, 올해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월 6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 2018(Integrated Systems Europe 2018)에서 공개 행보를 보였을 뿐이다.

구 상무가 LG를 맡아 어떤 경영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지분 문제도 과제다. LG는 지주회사 체제이기 때문에 (주)LG만 장악하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구 상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차근차근 지분을 늘리는 한편 친부인 구본능 회장과 고모부인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의 증여로 현재 (주)LG의 지분 6.24%를 가지고 있다. 3대 주주다. 이 과정에서 구 상무의 지분 매입 자본의 출처가 논란이 됐는데, 재계는 구본능 회장의 희성그룹을 지목하고 있다. 희성그룹은 LG의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매출이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구 상무는 2004년과 2007년 희성그룹 지분 23%를 매각해 상당한 자금을 확보했다. 이 자금이 (주)LG 지분 매입에 투입됐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구본무 회장은 (주)LG의 지분 11.28%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 상무가 이 지분을 모두 상속받으면 단순히 계산해도 지분은 약 18%로 늘어난다. 구본능 회장의 지분이 3.45%이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LG의 지분은 46.68%다. 구본무 회장의 두 딸에게 일부 지분이 넘어가는 등의 변수를 고려해도 구광모 상무가 지주사 LG(주)를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상속세가 걸린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구 상무가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모두 받으면 93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재계는 구 상무가 7.72%의 주식 지분을 가진 판토스를 주목한다. LG상사가 2015년 판토스를 인수할 당시 구 상무는 400억원 상당의 판토스 지분을 인수했고,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로 판토스의 외형은 점점 커지고 있다. 판토스의 상장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구광모 상무가 7.72%의 지분을 매각하면 상속세의 상당 부분을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 상무의 (주)LG 지분 확대 일등공신으로 지목되는 희성그룹이 LG의 일감 몰아주기로 컸다는 의혹에 이어, 판토스마저 비슷한 논란에 휘말릴 경우 구 상무의 도덕성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다만 판토스와의 연결은 과도한 해석이라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경영부진과 검찰수사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MC사업본부가 흔들리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는 1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중국 제조사에 일격을 당했다. LG화학도 원자재 가격 등이 급등해 위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다. 산업군에서 1등을 차지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최근 검찰은 조세포탈 혐의로 LG그룹 재무팀을 압수수색했고 LG전자는 하도급 업체 후려치기 의혹에도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