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 2016년 5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이하 의료분쟁조정법)의 일부 개정안인 이른바 ‘신해철법’이 국회를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격앙하기 시작하였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른 강제조정을 의사가 따르지 않거나 조정절차 자체에 응하지 않으면 의료진이 처벌된다고 하더라.’, ‘의료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의료 과실 여부를 판정한다고 하더라.’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신해철법이 도입된 지 2년, 그리고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된 지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 신해철법은 의료분쟁 현장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선 한 때 의료계를 충격과 공포로 내몬 신해철법의 실체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신해철법이라는 개정안을 통해 의료분쟁조정법에 새로 추가된 ‘문제의 조항’은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제9항이다. 개정 전 의료분쟁조정법에서는 환자 또는 환자의 유가족 측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에 의료분쟁 조정신청을 했을 때 의료기관인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를 조정중재원에 통지하여야만 조정절차를 개시할 수 있었다(제27조 제8항).

의료기관인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서를 송달받고도 14일 이내에 조정절차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통지하지 않는 경우 일반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청구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소한 조정중재원을 통한 분쟁조정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신해철법이라는 별칭을 가진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환자가 의료사고로 사망한 경우, 1개월 이상 의식불명인 경우, 심각한 장애를 입은 경우에는 의료분쟁조정 절차의 자동 개시가 가능해졌다(제27조 제9항). 즉,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의사나 병원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환자 또는 환자의 유가족은 조정중재원을 통한 분쟁해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의료기관에게는 여전히 조정중재원에 제시하는 강제조정 결정에 대해 이의를 해 조정을 성립시키지 않을 권한이 부여돼 있고, 강제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된다거나 의료 과실에 대한 판단을 비의료인이 한다는 등의 소문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해철법이 갖는 의의는 법원을 통한 의료분쟁해결, 즉 의료기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보다 이점이 많은 조정중재원을 통한 의료분쟁 조정의 길을 의학 지식이 부족하고 경제 여력이 부족한 환자 또는 환자의 유가족에게 널리 확대했다는 점이다.

법원을 통한 의료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환자 또는 환자의 유가족이 청구하고자 하는 금액에 비례하여 적잖은 인지대, 송달료, 감정비용 등의 법률비용을 지불하고,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변호사 선임을 해야 하는 반면, 조정중재원을 통한 분쟁해결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조정중재원의 직권적 의료감정절차에 따라 비교적 신속하게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조정중재원이 발표한 '2017년도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조정중재원이 2012년 4월 설립된 이래 2013~2017년까지 최근 5년간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2013년 1398건에서 2014년 1895건, 2015년 1691건, 2016년 1907건, 지난해 2420건으로 연평균 14.7% 늘었고, 특히 최근 5년간 조정 신청된 사건의 47.6%에 대해 조정절차가 개시됐는데, 지난해 조정개시율은 57.2%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해철법이 시행된 덕분이라 할 수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의료분쟁을 통한 권익 구제가 그 만큼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의료분쟁 대중화’의 문을 연 신해철법은 고(故) 신해철과는 무관하다. 신해철 사망 후 유가족들은 조정중재원을 통해 집도의와의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대신 집도의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집도의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했고,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 역시 신해철이 평소 가진 지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故) 신해철이라는 이름이 갖는 촌철살인의 사회비판 정신과 충격적인 사망이 가져온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신해철법을 세상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해철법은 비록 고(故) 신해철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살아생전 우리사회의 불합리한 기득권과 부조리에 맞서 싸운 그가 가난하고 힘없는 환자와 유가족들에게 주고자 한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