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별세했다. LG그룹은 20일 오전 구 회장이 숙환으로 향년 73세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지난 1년간 투병 생활을 했고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런 이유에서 가족 이외의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키로 했다.

고(故) 구본무 LG회장은 1945년 2월 10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에서 구자경 명예회장과 하정임 여사 사이에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1950년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이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에 합류하면서 구 회장은 어릴때부터 경영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구 회장은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1975년 LG화학 심사과장으로 LG그룹에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1년 LG전자 이사, 1989년 LG부회장에 이어 1995년 LG회장 자리에 올라 20년 이상 LG그룹을 이끌었다.

▲ 구본무 LG회장의 1995년 취임식 모습. 출처=LG
▲ 구본무 LG회장 약력. 자료=LG

‘집념의 승부사’ 구본무 회장

구 회장은 1995년 50세에 LG 3대 회장에 취임한 후 ‘전자-화학-통신서비스’의 3개의 핵심 사업군을 구축해 LG그룹이 글로벌 기업이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구 회장은 “제가 꿈꾸는 LG는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이고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한다”는 말을 취임사에서 했다. 집념의 승부사 기질을 취임때부터 보인 것이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초우량 LG’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한 후 제 2의 경영혁신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선제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미래 성장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평소 지론에 따라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 나갈 사업으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의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냈다.

2013년 임원세미나에서 구 회장은 “한 번 결정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필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실패에 대해서는 격려할 것”이라며 집념 있는 승부사 기질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구 회장의 승부사 기질로 OLED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사업 성장, 과감한 통신 사업 진출 등이 결과물로 나타났다. 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2차 전지 사업에도 과감히 90년대 초반부터 뛰어 들어 20년 넘게 끈기 있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해 왔다. 이로 인해 현재 2차 전지는 LG의 핵심 성장 사업이자 글로벌 선도 사업이 됐다.

LG그룹은 구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을 볼 수 있는 일화도 전했다. 구 회장은 골프를 칠 때 “내기를 할 때는 잘 하지만 그냥 칠때는 잘 못한다”면서 “딴 돈을 돌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게임은 이겨야 하는 것”이라며 승부사적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구 회장은 함께 골프를 친 한 외부인사에게 “저는 골프를 잘 못 치거나 스코어를 갖고 누구를 탓해본 적은 없지만 성의 없이 대충 대충 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뭐든 마찬가지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해 승부근성과 도전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 구본무 LG회장(흰 옷)이 2011년 LG화학 오창 공장을 방문한 모습. 출처=LG

LG 100년 대계 초석 놓다

구 회장은 경영체제와 기업문화에서도 선제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 잡음 없이 계열분리를 단행한 것이 구 회장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 후 경영시스템 강화를 위해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를 만든다. 계열사간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로 인해 한 기업의 어려움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되는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구 회장은 2005년 GS그룹으로 계열분리를 통해 창업 1세대인 구인회 창업회장과 허만정 공에서 시작한 협업 관계를 잡음 없이 정리한다. 구 회장은 GS그룹 출범식에도 직접 참석해 “지난 반세기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정과 고난을 함께 이겨냈다”면서 “LG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일등 기업을 향한 동반자가 돼 달라”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LG라는 이름 탄생에도 구 회장의 공이 컸다. 회장 취임 직전 구 회장은 그룹의 CI(corporate identity)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분산돼 있던 그룹 명칭과 이미지를 통합해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내부 구성원들의 일체감을 높이려는 이유에서다.

구 회장은 2005년 LG 고유의 기업문화인 ‘LG웨이(Way)’도 선포한다. LG웨이는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실력 배양을 통한 ‘정도경영’으로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 회장은 ‘1등 LG’도 강조했다. 1등 LG는 고객이 신뢰하고, 투자자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기업, 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 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영속기업 LG를 위해 구 회장은 연구개발과 인재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구 회장은 2008년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서 “연구개발(R&D)은 LG가 1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면서 “선진기업의 파상 공세와 후발 기업의 추격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이 R&D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구 회장의 신념은 국내 최대 융복합 연구개발 단지인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꽃을 피웠다.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약 5만 3000평)규모에 4조원을 투자해 연구시설 20개 동을 만들었다.

▲ 구본무 LG회장이 2016년 2월 LG테크노콘퍼런스에서 대학원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출처=LG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사회공헌 활동 적극 나서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 우리가 하는 활동 하나 하나가 더 나은 고객의 삶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한다”

구본무 회장은 2017년 신년사에서 사회공헌에 대한 철학을 확고하게 보여 줬다. 구 회장은 2015년부터 LG복지재단을 통해 ‘LG의인상’을 제정했다.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가회적 책임으로 보답하갰다는 취지에서다.

구 회장은 의인상 뿐만 아니라 의로운 행동으로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된 사람들도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17년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총기사고 유가족에게는 구 회장이 직접 개인 돈으로 위로금 1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2015년에는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중상을 입은 2명의 군 장병에게 치료와 재활 등에 쓰이길 바란다면서 각각 5억원씩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자연환경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도 1997년에 설립된 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곤지암 일대에 생태수목원인 ‘화담(和談)숲’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은 구 회장의 아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