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국제유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72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북해산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승세에 연말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100달러 시대를 열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의 명과 암은 무엇일까?

최근의 유가 상승세를 두고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17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정유기업 토탈(Total)의 파트리크 푸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워싱턴DC에서 한 싱크탱크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우리는 지정학이 시장을 다시 지배하는 세상에 있다”면서 “몇 달 내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감산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이란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 선언이 국제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4일에는 유가정보업체인 OPIS의 톰 클로저 에너지 담당 연구원도 CNBC 인터뷰에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70~100달러 어느 선까지도 오를 수 있으며, 어느 지점을 예상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까지 국제유가가 100달러만큼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산 원유의 기준유인 WTI 6월 인도분은 배럴당 72.4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15년 이후 3년 반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영국 런던ICE 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브렌트유는 배럴당 79.30달러로 장을 마쳤으나 장중 한때 80달러 선을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유가가 오르면 수출국에는 분명한 명(明)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수입국에는 그 반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올해 원유 수입에 사용할 자금은 1조달러(약 108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급등한 수치다.

유가 상승은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밥상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지난달 수입물가는 올 1월부터 4개월 연속 상승하는 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수입물가는 85.03으로 한 달 전보다 1.2% 상승했다.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아울러 가파른 유가 상승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를 야기할 수 있어 생산과 소비경기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국제유가와 미국 경제성장률은 정비례 관계를 보였다. 출처=신한금융투자

그렇다고 유가 상승이 우리나라에게 항상 암(暗)인 것은 아니다. 지나친 고유가만 아니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유지되는 게 경제 성장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산유국가의 경제 성장으로 2차 투자가 이어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글로벌 경기도 활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투자는 18일 보고서를 통해 “70달러 근처의 유가는 경제 성장에 긍정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유가(원가) 상승은 제품가격(판가)에 반영돼 정제 마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제업의 마진 확대는 여타 제조업으로 확산돼 경기 전반에 걸쳐 긍정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됐다.

▲ 지나친 고유가만 아니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유지되는 게 경제 성장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 실제로 유가가 70달러 부근에서 등락할 경우 미국 산업생산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다. 출처=신한금융투자
▲ 국제유가가 40~80달러 구간에서 소비도 크게 늘어났다. 출처=신한금융투자

실제로 국제유가와 미국 산업생산 증가율에는 '유의미한 아치형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유가가 70달러 부근에서 등락할 경우 산업생산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다. 지난해 말 OPEC의 감산 합의 연장 등으로 국제유가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미국 산업생산 증가세는 확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생산이 늘면 고용과 소비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80달러 사이에 있을 때 비농가 취업자 수가 전월 대비 약 20만명 늘며 큰 폭으로 확대됐고 소비 환경 역시 국제유가가 40~80달러 구간에서 평균 소비 성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활한 고용 창출에 따른 구매력 강화가 소비 확대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부장연구위원은 “유가는 미국의 이란 제재 관련 추가 발언이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75달러 위로 오를 수 있다. 다만 펀더멘털의 변화는 미미해 연내 70달러선 내외에서 안정을 찾을 것”이라면서  “이 같은 유가 환경은 생산, 고용, 소비 경기에 양질의 환경을 조성한다. 유가 급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는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