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 “창조적 파괴 없이는 한국의 선진국 도약은 어려울 겁니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급 간부가 한 말이다. 그는 미국 최고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정부 부처에서 몸을 담았고 지금은 민간 기업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다. 글로벌 조류와 한국의 민관 동향을 두루 아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받은 질문은 아주 간단했다. “한국에 비전이 있는가”라는 한 마디였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철부지나 일부 이념에 치우친 언론들이나 자주 말한 ‘헬조선’이란 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의 눈에 한국은 철저하게 ‘기득권’의 사회라는 것이다. 공무원이든 아니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대학이든 철저하게 기득권만을 지키고 기득권만을 위해 움직이는 사회가 한국이라고 정의했다. 경쟁과는 담을 쌓고 살면서 면피용 대책만 내놓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중고교 내내 암기하고 대학에서도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위해 달달 외워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사무관, 과장, 국장과 실장, 장차관 등 관료들이 내놓는 정책은 급변하는 대외 경제 현실이 요구하는 현장 밀착형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이다.

근 30년을 공직과 공기관을 취재해본 경험에 비춰보면 그의 주장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을 팔아도 공무원과 공기관 등 공직사회는 철옹성처럼 버텼다. 달라진 게 있다고 하면 부인하지 않겠다. 장기 근속, 고액임금, 해고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이렇듯 안일하게 사는데 왜 신경을 쓰랴? 이런 생각이 스친다.

열과 성을 다해 대책을 세우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 공무원과 공직자도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이 시장에서 겪는 경쟁의 압박에서 자유롭고, 따뜻한 삶을 누린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삶을 선택한 이들을 비난할 뜻은 전혀 없다. 그런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누리기 위해 공부하고 취직하는 것을 나무랄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런 사회에 들어간 사람이 자기의 안일한 삶을 깨뜨릴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마찬 가지다. 대기업 종사자들은 대기업이 주는 연봉과 온갖 혜택을 위해 대기업을 옹호하고 중소기업은 그 나름의 권익을 누리기 위해 자기들의 집단 이익을 추구한다. 맞다. 이것이 한국이 돌아가는 이치다. 다들 자기들만의 세상을 위해 살 뿐, 더 큰 사회,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이게 한국 사회라고 하면 오판일까?

한국의 기득권 사회는 그동안 성장집착 사회였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성장률이 높아졌는가? 임금이 높아졌는가? 행복한가?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세계에서 근무시간이 두 번째로 긴 나라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 정도로 경제규모가 10배 이상 큰 미국보다 조금 높을 뿐이다. 실업률은 어떤가? 4월 4.1%로 미국의 3.9%보다 높다. 미국의 시간당 임금은 26달러가 넘는다. 한국은 창피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시간당 임금을 올리니 “기업이 힘들다”는 죽는 듯한 목소리가 도처에서 들린다. 기득권이 지배하는 한국은 저성장 고실업, 저임금의 사회라는 결론 외에 없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낮은 임금을 주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가? 사람을 쓴다면 마땅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느 선진국 치고 인건비가 높지 않은 사회가 없다. 그러면서도 성장에 집착하지 않는다. 노력의 결과로 나오는 것을 성장으로 여기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한국 사회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기득권에 안주한 이들이 내놓은 정책으로 온 국민을 쥐어짜듯 하는 접근법은 이제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 공직사회, 공기관터 개방형 직위를 시혜를 베풀듯 외부에 개방하는 게 아니라 아예 핵심 일자리를 외부에 개방해야 한다. 히딩크 같은 인물을 고용해 충격요법을 통해 안일의 껍질을 깨부숴야 한다. 국가 지도자, 시민단체들은 소금의 역할을 다시 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50~100년 뒤를 내다보는 대계를 다시 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스로 대북 정책을 세워 미국을 설득한 사례가 있지 않는가. 왜 국민을 행복하게 할 비전을 세우지 못하는가? 기득권에 안주하는 순간 교체의 대상이 됨을 왜 모르는가? 지금이라도 20~30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박힌 기득권 구조를 갈아치우는 혁신을 준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