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둘러싸고 현대차와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캐스팅보드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의 선택에 관심이 몰린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연이어 개편안에 대한 반대권고를 내면서 외국인 주주들이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국민연금의 선택은 국내 다른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날부터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고 오는 29일로 예정된 현대모비스 주주총회에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의 핵심인 현대글로비스와의 분할합병 건에 대한 입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이번 안건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입장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2018년 1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의결권행사 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내부투자위원회는 의결권 전문위원 3명 이상이 요구할 경우 이사 선임이나 합병 등 주요 주총 안건에 대한 찬성·반대·중립 등의 의사결정권을 전문위원회에 넘겨야 한다. 전문위원회에서 논의해서 결정하면 기금본부는 이를 그대로 따르게 된다.

오는 29일 개최되는 현대모비스의 주주총회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안건이 통과되려면 의결권 있는 지분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해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현대모비스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한 현대차그룹측의 우호지분은 31%다. 국민연금은 2대 주주로 9.82%를 갖고 있다. 외국계 투자자의 지분율 총합은 48%다. 일반적으로 주총 참석률이 70~80% 수준인 것을 고려할 때 개편안이 통과되려면 현대차그룹은 최소 50%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 최대 글로벌 의견궐 자문사로 꼽히는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외국인 주주들의 표심을 얻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ISS는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이 사업 타당성이 부족하고 현대모비스 주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래스 루이스 역시 글래스 루이스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가치평가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아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48%를 보유한 외국인 주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기를 느낀 현대차그룹은 이에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현대차그룹측은 “ISS가 해외 자문사로서 순환출자 및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자본시장법 등 국내 법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의견을 제시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또 “규제 리스크는 기업 사업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주주 가치제고를 저해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 우려를 선제적으로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ISS가 주장하고 있는 주주가치 침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업계의 관심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선택으로 몰리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지분 9.8% 보유한 국민연금은 사실상 이번 안건 통과를 결정지을 캐스팅 보트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안건의 통과가 결정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다른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현재까지는 국민연금 입장에서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연일 쓴소리를 내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오너 일가가 1조원 이상 세금을 납부하고 편법승계에서 논란에서 벗어나겠다는 입장도 밝힌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연이어 개편안에 대한 반대권고를 내면서 외국인 주주들이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면서 “국민연금의 의견은 국내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민연금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보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