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리테일 테크의 핵심은 ‘오프라인’ 유통이다. 기술의 반영이 상품의 구매와 판매 과정에 일으키는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가상의 공간인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의 리테일 테크도 글로벌 유통업계 트렌드를 이끄는 미국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보이는 변화의 결과를 보일 수 있는 기술 투자에 역량을 쏟을 수 있는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리테일 테크 변화는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맞수’ 롯데와 신세계가 이끌고 있다.
롯데의 리테일 테크 ‘옴니채널’
‘옴니채널(Omni-Channel)’은 소비자가 온라인·오프라인·모바일 등 다양한 유통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갖춰놓은 체계 혹은 서비스를 의미한다. 즉, 유통 채널의 특성을 결합해 어떤 채널에서든 같은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한 쇼핑 환경이다.
롯데는 최고경영자인 신동빈 회장의 주도 아래 지난 몇 년 동안 유통의 옴니채널화를 줄곧 강조해왔다. 그래서 지난 몇 년 동안 롯데 유통부문의 사업 방향은 ‘온-오프라인의 유기적 연결’을 이루는 기술 적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바탕으로 롯데가 보유한 다양한 유통 채널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글로벌 유통업체들의 국내 시장 진입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롯데는 주요 유통사인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닷컴 등을 포함한 모든 유통 계열사들을 동원해 옴니채널 구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6년 12월 롯데는 글로벌 IT기업 IBM의 한국지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IBM의 인공지능 기술 ‘왓슨(Watson)’을 도입했다.
롯데는 현재까지 왓슨을 다양한 유통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대표 사례로는 ‘지능형 쇼핑 어드바이저’ 챗봇(Chatbot·사용자와 자동으로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이다. 롯데는 이 기술을 백화점 등 대형 유통채널에 도입해 고객들이 챗봇과 대화로 상품 추천, 매장 설명 등을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롯데는 또 IT 기술로 쇼핑 고객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롯데백화점은 고객들이 식품 매장에서 카트나 바구니 없이 작은 단말기를 사용해 쇼핑할 수 있는 서비스 ‘스마트 쇼퍼(SMART SHOPPER)’를 지난 2016년 10월 분당점 식품 매장에 처음 선보였다. 스마트 쇼퍼는 고객들이 바코드 스캐너 ‘쇼퍼’를 들고 식품의 바코드를 찍고 매장에 위치한 무인 계산대에서 바코드로 찍은 상품을 최종으로 선택해 결제하면 집으로 배송받는 서비스다. 분당점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 7월 롯데백화점 노원점에도 도입됐다.
롯데백화점은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3D 피팅(Fitting·의류 사이즈 맞춤) 서비스도 도입했다. 이는 디지털 거울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고객이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옷을 입었을 때의 옷매무새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현재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 서비스는 첫 도입 후 월 평균 약 1500명이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롯데는 편의점에도 리테일 테크를 도입했다. 롯데의 계열사 코리아세븐이 운영하는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5월부터 롯데월드타워에 스마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는 정맥(靜脈)으로 상품을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 ‘핸드페이(Hand Pay)’를 비롯해 무인 계산대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집약된 편의점이다. 올해 2월 세븐일레븐은 서울 중구 롯데손해보험빌딩에 시그니처 2호점의 문을 열었다.
신세계 ‘첨단’으로 추구하는 유통 혁신
롯데의 맞수 신세계가 리테일 테크를 소홀히 할 리가 없다. 리테일 테크에 대한 신세계의 관심도 롯데 못지않게 뜨겁다. 롯데의 리테일 테크가 유통 시스템의 변화를 강조한다면 인공지능 로봇이나 스마트 쇼핑카트 등 하드웨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신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세계는 유통과 IT의 결합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필수 요소로 여기고 몇 년 전부터 이를 대비해왔다. 신세계는 2014년 12월 자사의 대형마트 이마트에 첨단 IT기술을 쇼핑과 접목하는 전문 연구기관 ‘S-랩’을 설립했다. S-랩은 인공지능·로봇·쇼핑과 IoT(사물인터넷) 접목,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 분야 기술 적용 검토, 매장 디지털화 등 유통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혁신 기술들을 실험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인간형 로봇을 국내 오프라인 쇼핑 매장 최초로 도입했다. 신세계는 테마파크형 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의 장난감 매장 ‘토이킹덤’에 인공지능 로봇 ‘나오(Nao)’를 선보였다. 나오는 미국 IBM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을 탑재한 로봇이다. 나오의 매장 배치를 위한 모든 프로그램은 이마트가 자체 개발했다. 나오는 키 58㎝의 인간형 로봇으로 음성과 동작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나오는 토이킹덤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상품 추천·매장 안내·퀴즈·음악 연주-놀이 등 4가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이마트는 고객이 손으로 밀고 다닐 필요가 없는 자율주행 쇼핑 카트도 선보였다. 이마트는 지난달 창고형 할인매장 이마트 트레이더스 하남에 자율주행 콘셉트 스마트카트 ‘일라이(Eli)’를 처음 공개하고 시범 운영했다.
일라이는 이마트가 실제 매장에서 운용하기 위해 약 1년 동안 자체 기획하고 개발한 스마트 카트다. 일라이는 시범운영 전부터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자기의 SNS로 그 모습을 공개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일라이는 사람의 동작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와 음성인식 기능, 상품 무게 인식 센서, 자동 복귀 기능 등이 탑재돼있다. 상품이 있는 자리로 고객을 안내하거나, 고객과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다닐 수 있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상품의 즉시 결제도 가능하다.
일라이보다 앞서 중국의 대형 유통기업 징동이 선보인 상품정보 제공과 고객을 따라다니는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카트보다 기술과 기능 측면에서 한 단계 앞서 있다. 지난달 이마트는 총 4일 동안 일라이 2대의 시범 운영을 마쳤다.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신세계의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나오에 이어 이마트는 일본의 IT기업 소프트뱅크 사가 만든 인공지능 로봇 ‘페퍼(Pepper)’를 매장에 배치해 지난 9일부터 이마트 성수동 본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페퍼는 약 20일 동안 운영된다.
키 1.2m의 인간형 로봇 페퍼는 여러 개의 센서와 카메라로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장애물을 인식한다.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페퍼의 특징이다. 이마트에 배치된 페퍼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다. 오후 1~4시에는 이마트 성수동 매장 입구에서 고객들에게 인사와 매장 안내를 한다. 저녁 7~9시에는 수입맥주 판매대에서 고객들에게 행사 상품을 알려주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등 도우미 임무를 수행한다.
하드웨어를 활용한 이마트의 리테일 테크는 앞으로 계속 진화된 형태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마트 디지털 전략실 형태준 본부장은 “이마트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글로벌 유통업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혁신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향후에도 고객들의 쇼핑을 더욱 편하게 만드는 다양한 IT 기술들을 실제 매장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