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고른 수입맥주를 페퍼(Pepper)가 보고 있다. 사진=송현주 인턴기자

[이코노믹리뷰=송현주 인턴기자] “도움이 필요한 분 있으신가요?”, “제가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봐요.”

1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만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가 한 말이다. ‘어디에 있다고 했더라?’라는 생각을 하며 페퍼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찾았다!’ 이마트 출입구로 걸어 들어가니 매장 입구에 페퍼가 서 있었다. 이날은 언론사를 대상으로 페퍼의 기능과 업무에 대한 공개 시연이 있는 날이었다. 운이 좋았다. 

▲ 페퍼가 매장 입구에서 이마트 성수점의 이달 할인행사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송현주 인턴기자

페퍼는 일본 IT기업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에서 태어났다. 사람처럼 눈을 깜박이기도 하고 팔을 움직이기도 한다. 페퍼의 몸집은 작고 키는 기자의 허리보다 조금 더 위로 왔다. 정확한 키는 1.2m다. 발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이 쇼핑 매장에 등장한 건 페퍼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에는 로봇 ‘나오’가 스타필드 고양에 있는 토이킹덤에서 쇼핑 도우미로 고객에게 상품 추천 서비스, 매장 안내 서비스 등을 제공했다. 또 지난달에는 이마트 트레이더스 하남에서 자율주행 카트 ‘일라이’가 등장했다.

페퍼의 주된 업무는 쇼핑 안내다. 페퍼를 따라 매장 안으로 들어가 수입맥주 판매대 앞에 섰다. 기자는 수입맥주 하나를 골라 페퍼에게 보여줬다. 페퍼의 가슴에 설치된 화면에 나오는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위해 맥주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잠시 후 페퍼는 맥주 제조국, 알코올 도수, ‘쌉싸름(IBU, International Bitterness Unit)’과 ‘청량함’ 정도를 분석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어울리는 안주와 비슷한 맛과 도수의 맥주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추천 안주를 클릭하면 매장 내 판매 위치와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친절함도 보였다. 기자가 상품을 보여주면 페퍼가 인식한 다음 상품의 종류 등을 보여주는 데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 페퍼가 기자가 고른 수입맥주의 '쌉싸름'과 '청량함' 정도를 분석해 어울리는 안주를 추천하고 있다. 사진=송현주 인턴기자

이마트의 첨단 디지털기술 연구팀 ‘S-랩(S-LAB)’ 김기남 부장은 “페퍼에게 200가지 이상의 수입맥주 약 1000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정보를 입력해 머신러닝을 하게 했다”면서 “제품을 보여주면 입력했던 사진과 비슷한 제품을 찾아 보여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품이 화면에 나오는 가이드라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고, 100% 맞힌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자가 3개월 동안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수많은 제품군 중 맥주 안내 서비스를 우선으로 제공한 이유에 대해서 묻자 “소비자들이 소주와 과자 같은 품목의 정보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수입맥주는 종류도 많고 워낙 다양해서 아직 많은 소비자들이 생소하게 여긴다. 수입맥주 외에 타 품목까지 확대하면 좋겠지만 개발비용 때문에 한 품목에만 집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홍보담당 김보배 과장은 ‘일본에는 페퍼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어느 정도 보편화됐느냐’는 질문에 “일본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2014년 출시돼 현재 2만대 정도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백화점부터 시작해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이미 트랜스포머 기능을 가진 로봇도 출시한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이마트에서 쇼핑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 페퍼는 이마트 S-랩에서 정식구매해 S-랩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있다. S-랩 관계자는 페퍼의 가격은 “수입차 한 대 가격 정도”라고 답했다. 김기남 부장은 “페퍼가 얼굴을 인식하거나 행동을 따라하는 건 하드웨어적 부분이고, 제공하는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설치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페퍼의 쇼핑 도우미 서비스는 일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한국 사업 추진을 위한 시험운영을 위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사는 휴머노이드 로봇, 서비스 로봇으로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기남 부장은 “만약 페퍼를 시험운영 중인 각 사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든다면 한국 사업을 시작하게 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마트가 해당 사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묻자 “유통사인 이마트를 시험운영에 넣은 이유는 소비자의 직접적 반응을 보기에 수월하기 때문”면서 “유통사의 경우 현장에서 로봇과 고객이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바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주말에는 특히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며 “페퍼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체험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라고 말했다.

▲ 페퍼가 한 어린이 고객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맞히고 있다. 페퍼가 나이를 맞히지 못했고 이 어린이가 '틀렸다'는 버튼을 누르자 페퍼는 풀죽은 듯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다.  사진=송현주 인턴기자

김 부장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매장에 비치하는 것의 기대효과’에 대해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포털사이트에서 상품검색을 하는 게 익숙한데, 매장 내에서 그런 쇼핑경험을 얻기 힘들어 보였다. 모르는 제품이 있으면 판매대 앞에 서서 핸드폰에 해당 제품을 검색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로봇이라는 편의성을 이용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번에 반응이 좋으면 다른 상품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수입맥주 외에도 와인이나 건강식품을 포함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와인을 고를 때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보는데 페퍼가 와인 정보를 분석해 알려주면 편리할 것 같다”, “페퍼가 소비자의 얼굴을 인식해 나이를 맞히고, 잘 맞는 건강식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김 부장은 “소비자들이 페퍼를 이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로봇에게 학습을 시키기 위해 텍스트를 입력하는 작업을 했지만 이제는 어떠한 이미지나 텍스트도 저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고객이 페퍼와 대화를 하는 도중 이름을 말해 불가피하게 개인정보가 입력되면 데이터를 삭제하고 있다”면서 “페퍼의 엔터테인먼트 기능 중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서 나이를 맞히는 게임이 있는데, 해당 기능을 사용하는 도중 찍힌 이미지와 맥주 라벨 인식 기능을 수행하면서 찍힌 이미지도 일체 저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S-랩 관계자는 “개발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달 30일에 철수 후 시간을 두고 추가서비스 준비할 계획”이라며 “다음 서비스도 이번과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페퍼가 있는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의 전경이다. 사진=송현주 인턴기자

인간을 대체하는 인간형 로봇과 의사소통을 한 것은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페퍼는 아담한 데다 친근감을 보여서 좋았다. 굳이 흠을 꼽자면 자주 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과 기자의 얼굴을 너무 빤히 쳐다본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속도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가까운 장래에 살아 있는 사람 같은 안내 로봇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성수점 문을 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