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9명은 기업문화 혁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회사에 있는 상급자들이 말로만 혁신을 외치고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와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14일 ‘한국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기업문화에 대한 직장인들의 생각을 전했다. 이번 보고서는 2016년 1차 진단 후 2년간 기업문화 개선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대기업 직장인 2000명과 국내 주요기업 8개사를 분석했다.

보고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실제 직원들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한국 기업문화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A대리는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복장을 자율화하고, 직급호칭을 없앴는데 정장 의견은 잘 듣지 않는다”면서 “듣더라도 보고과정에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로 변질되곤 한다. ‘청바지 입은 꼰대’들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차장 역시 “강제 소등하고 1장짜리 보고서 캠페인을 했지만 1장짜리 보고서에 첨부파일만 30~40장이 있어 무늬만 혁신”이라면서 “이는 낭비이자 눈가리고 아웅식 행정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사에 따르면 2년 전 후진적 기업문화 요소로 지적받았던 습관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 불통의 업무방식 등이 다소 개선됐지만 여전히 낙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문화 개선 효과를 체감하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일부는 개선이 있지만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이 59.8%, ‘이벤트성으로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응답이 28%로 직장인 87.8%가 부정적인 대답을 했다. 반면 근본적으로 개선이 됐다고 답한 응답자는 12.2%에 그쳤다.

▲ 국내 기업문화 평가. 출처=대한상공회의소

세부항목으로는 2016년 1차 조사와 비교했을 때 야근이 31점에서 46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50점 아래로 낙제수준이었다. 회의도 39점에서 47점으로, 보고도 41점에서 55점으로 상승했지만 50점대 언저리였다. 회식만 77점에서 85점으로 개선돼 ‘우수’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야근, 회의, 보고 등 주요 항목은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면서 “기업의 개선활동이 대증적 처방에 치우쳐 있어 조직원들의 피로와 냉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4대 개선과제도 발표됐다. 대한상의는 빠른 실행 업무프로세스,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가벼운 조직체계, 자율성 기반 인재육성, 플레잉코치형 리더십 육성을 제시했다.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빠른 경영환경 변화 대처에 필요한 역량으로 유연성을 꼽지만 이에 적합한 체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조직은 흔들리게 된다”면서 “프로세스, 구조, 인재육성, 리더십 등 전반에 걸쳐 역동성과 안정적 체계를 동시에 갖춘 양손잡이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의는 기업문화 개선을 위한 활동 청사진도 내놨다. 대한상의는 기업문화 개선방향을 논의하고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플레잉코치형 리더십육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또 업무방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자와 기업문화 개선의 지침서로 삼을 표준매뉴얼도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국내 주요 8개 기업 조직건강도...글로벌 수준이 비해 약체

한편 ‘조직건강도 심층진단’에서는 조사 대상 8개사 중 7개사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약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4개사는 최하위 수준, 3개사가 중하위 수준, 1개사만이 중상위 수준을 기록했다.

조직건강도(OH)는 기업의 조직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맥킨지가 1991년 개발한 진단 툴로 9개 영역 37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세부 영역별로 보면 책임소재, 동기부여 항목에서는 국내 기업이 상대적 우위를 보였지만, 리더십, 외부 지향성, 조율과 통제(시스템), 역량, 방향성 등 대다수 항목에서는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건강을 해치는 3대 요인으로는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 비합리적 성과관리, 리더십 역량 부족이 꼽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전근대적이고 낡은 한국기업의 운영 소프트웨어가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 반기업 정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기업문화 혁신을 필수과제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인 개선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