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를 중심으로 보편요금제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실망스러운 실적을 기록한 통신3사가 5G 투자는 커녕 당장 미래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엄살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보편요금제 나비효과

규제개혁위원회는 지난 11일 월 2만원대에 데이터 1GB와 음성통화 200분을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위 이동통신 사업자만 해당되지만 2년마다 정부가 보편요금제의 틀을 새롭게 정하기 때문에, KT와 LG유플러스도 비슷한 요금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보편요금제 도입이 현재 확정된 것은 아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규개위에서 보편요금제를 통과시켰고,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보편요금제 도입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보편요금제를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의 핵심으로 삼는 분위기다. 기본료 일괄폐지가 무산된 상태에서 약정할인율 25% 인상, 어르신 최대 1만1000원 요금 감면에 이어 3번째 가계통신비 인하 주력 정책으로 보편요금제가 등장한 셈이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둘러싼 정부와 통신사의 이견은 지금도 첨예하다. 통신사들은 정부가 민간시장인 통신시장에 과도하게 진입해 규제 일변도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가 2년마다 적정 요금제를 설정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통신비를 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알뜰폰 사업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이 감소해 5G 투자가 예정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통신3사 연 매출이 7812억원 줄어들며, 영업이익은 60%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경고음도 울린다.

정부는 보편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도, 통신사들의 반박에 '슬쩍' 발을 빼는 분위기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나머지 통신사들은 요금제를 자율적으로 설계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민간시장인 통신시장에 과도한 개입에 나선다는 비판과, 보편요금제 도입이 SK텔레콤에만 영향을 미칠 뿐 장기적으로 다른 통신사에는 큰 파급효과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가 2년마다 적정 요금제를 발표하는 것도 요금 인가제를 폐지하는 것으로 통신사들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법제화 과정에서 따로 '특별관리'한다는 방침이며, 통신사 매출과 영업이익 하락에 따른 신사업 투자 의지 저하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반박에 논리적 허점이 많다는 점이다. 핀란드 시장조사업체 리휠의 주요국 통신비 차이 결과 국내 통신비가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이는 국내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적인 데이터라는 점이 확인됐다. 고가 요금제 중심의 국내 통신요금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정부는 보편요금제로 일괄규제만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 플랫폼 인사이트 연구소의 박경수 연구원은 "정부는 통신사의 고가 요금제 유도가 가계통신비 인상의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면서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를 먼저 내놓고, 차근차근 가계통신비 인하 여력을 살피는 과정이 빠졌다"고 비판했다.

보편요금제가 SK텔레콤에만 도입되고, 다른 통신사들은 자율 규제에 맡기기 때문에 '엄청난 후폭풍'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1위 사업자가 보편요금제 적용을 받으면 다른 통신사들이 가만히 있겠는가"라면서 "정부는 막상 보편요금제가 출시되자 민간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면피성 발언만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올해 1분기 통신3사는 모두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고,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선을 넘을 경우' 5G와 같은 신사업 투자도 요원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통신 업계 관계자는 "보편요금제 도입 후 통신사들이 5G 투자에 나설 여력이 남아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뒤에서는 압박 일변도로 나서고, 앞에서는 5G를 위한 투자를 요구하는데 5G 주파수 가격만 해도 큰 부담이다.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통신비 원가 압박까지 이어지며 통신3사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엄살인가?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는 순간 통신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증폭됐다는 비판도 있다.

통신3사는 지난해 약정할인율 25% 인상 후 막대한 영업이익 저하를 걱정했다. 그러나 지난해 통신3사의 영업이익은 2016년과 비교해 오히려 220억원 이상 올랐다. 물론 약정할인율 25% 적용 시점을 고려하면 올해 1분기 실적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반론도 나오지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당시에도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었던 사례가 있다. 통신사들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기 때문에, 보편요금제 후폭풍도 제한적인데다 큰 폭의 영업이익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보편요금제가 알뜰폰 사업자의 위기를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법제화 과정을 통해 알뜰폰 사업자를 구제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말도 있다. 또 정부가 민간시장인 통신업계에 과도한 규제를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통신사업이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국가 기간 인프라 사업이며, 정부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