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핑하고 있는 인도 여성들. 더 많은 여성들이 소비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고 있다.       출처= SheThePeopl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인도 여성들이 개인 및 가족의 재정적 의사 결정에 더 많은 통제권을 갖게 되면서, 그런 문화적 변화가 대형 소매 업체들의 판매 전략까지 바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인구 13억의 이 나라 여성들은 오랫동안 차별을 견뎌 오면서 엔지니어링, 금융, 기술 등 현장의 일터에서부터 기업 이사회나 의회 같은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인도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27%로, 미국의 5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동안 인도의 많은 부모들은 전통적으로 아들을 선호했다. 밖에 나가 일을 해 돈을 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은 집 밖에서 일하지 못해 재정적 부담을 주는 존재로만 간주되었다.

보스톤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의 니미샤 자인 이사는 “인도는 항상 남성이 직장과 소비 모두를 통제하는 사회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 문화적 변화, 수십년에 걸친 비정부기구의 노력, 정부의 안정 등에 힘입어 여성들이 교육, 인터넷, 은행 계좌, 대출 및 보조금 등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높아졌다. 인도 가정생활에 대한 최근의 정부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의 이런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재정적 자율성도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5억의 힘: 인도 여성의 출현>(Half a Billion Rising: The Emergence of the Indian Woman)의 저자인 아니루다 두타는 “변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가족일지라도, 큰 딸의 과거와 작은 딸의 현재가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뭄바이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난다 마노하르 뮬은, 전에는 세 자녀의 음식과 옷을 사기 위해 남편의 돈이 필요했지만, 이제 그녀는 훌륭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남편도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출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최신 스마트폰, 건강식, 유행하는 옷을 사주고 싶고, 친구들과 외식하고 여행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돈이 필요하면 현금 인출기에 가서 돈을 찾기만 하면 됩니다. 남편에게 ‘나는 이 물건을 살 거야’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지요.”

소매 업체들은 이런 변화의 증거를 계산대에서 직접 보고 있다.

상위 중산층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도 최대 소매 회사인 퓨처 그룹(Future Group)은 2016년에 전국 250개 이상의 매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옷이나 신발들을 더 많이 샀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에 따라 식료품 매장과 편의점에서 냉동식품 공간을 5배 이상을 늘렸고, 세탁기, 밥솥, 토스터, 진공청소기 등과 같은 제품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판매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회사인 플립카트(Flipkart)도 지난해 여성 구매자가 남성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더 많은 양의 상품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여성 패션 및 가정용 제품 카테고리를 크게 늘렸다. 

 

 

 

 

 

 

 

플립카트의 스미리티 라비찬드란 이사는 주저 없이 “여성은 인도의 전자상거래의 미래”라고 말한다.

나렌드라 모리 총리는 소녀들의 보호와 교육을 최우선 사항으로 삼았다. 그는 부모들에게 딸들을 위한 저축을 장려하도록 이자가 특별히 높은 계좌를 제공하는 정부 후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더 많은 여성들이 텔레비전과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의 열망은 계속 커지고 있다.

다국적 미디어 회사인 덴츠 이지스 네트워크(Dentsu Aegis Network)의 아스히시 바신 아시아 지역 CEO는 인도의 이런 전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도 정부는 여자 어린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행동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여성들에게 자신감이 생기고 있고, 여성들이 비로소 진정한 소비자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은행 계좌를 보유한 여성의 수는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소비력에 있어 남성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2011~2016년 사이 5년 동안 인도의 1인당 연간 가처분 소득은 남성이 59% 증가해 12만9000루피(약 210만원)인 반면, 여성은 63% 증가했지만 5만3000루피(약 86만원)에 불과하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도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최근 하락세를 보였다. 인도는 또 남성이 여성보다 의류에 돈을 더 많이 쓰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2017년 여성 의류 시장은 약 190억달러로 남성 의류 시장보다 20%나 작았다.

▲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은행 계좌를 보유한 여성의 수는 2006년에서 2016년 사이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출처= Dreamstime.com

그러나 여성들이 개인이나 가계를 위해 돈을 쓸 자유가 늘어나고 보다 적극적인 구매자가 되면서, 기업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지출 습관을 들여다보면, 그런 변화가 비교적 잘 사는 자유로운 도시 중산층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 빈민가와 먼 시골 마을의 여성들도 정부의 노력으로 더 많은 교육을 받게 되면서 더 많은 여성들이 은행 계좌를 갖게 되었다.

비교적 여유가 없는 여성을 겨냥한 온라인 소매점 샵클루(ShopClues)의 리티카 타네자 이사는 “인도 여성 인구 중에 이런 계몽된 여성들이 1급 대도시에서뿐 아니라 2급, 3급, 4급의 중소 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인도는 도시를 인구 규모에 따라 분류한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의 프로그램 담당 관리자인 야미니 아트마빌라스는 여성들이 재정 통제력을 갖게 되면서 자신감과 가족 내에서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소득에) 직접 접근하면서, 좀 더 많은 활동 공간과 더 많은 이동성을 요구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됐지요.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즉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27살인 비말 딜립 파울레는, 뭄바이에서 4시간 떨어진 그녀의 마을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유니레버(Unilever PLC) 제품을 파는 직업을 갖기 전에는, 집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열심히 번 돈으로 보석, 사리(Sari, 인도 여성들이 입는 옷 종류), 냉장고를 샀다. 그녀는 또 딸의 교육을 위해 저축도 하고 있다. 그녀는 여섯 살짜리 딸이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란다.

“예전에는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께) 돈을 요구하며 집 안에만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