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부탁해> 김민영·김민정 지음, 송효정 그림, 사계절 펴냄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이 책은 ‘징검다리 역사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시리즈 도서의 14번째 권이다. 징검다리 역사책은 그동안 ‘문명과 역사를 만든 소금’ ‘한강의 작은 마을 밤섬’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 등 한국의 역사를 주제로 삼아왔다.

책 속의 주인공 초등학생 소년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과 누나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집안의 막내아들이다. 이야기는 소년이 할머니의 기억을 따라 때로는 시간 여행을 하고 낯선 손님을 만나기도 하면서 전개된다.

집안의 가족들은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순정 씨’라고 부른다. 치매 때문에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기억 속 자기 모습은 할머니가 아닌 소녀 김순정이기 때문이다. 소년은 할머니에게 “함께 역사책을 보자”고 하지만 할머니는 “책 볼 것 없어, 내가 살아온 게 역사인데”라고 대답한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전에 태어난 할머니에게는 현대사 속 굵직한 사건들이 눈앞에서 직접 펼쳐져왔다.

▲ <할머니를 부탁해> 속  ‘우리가 지킨 우리말’ 편. 출처=갈무리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해방을 맞았다. 이전까지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거나 말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한글로 된 책을 찾았다. 당시 소녀였던 할머니 김순정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손자와 함께 종로 낙원동으로 간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있던 서점에 간 일행은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책을 사가지고 갔던 사람을 기억하는 서점 주인을 만난다.

▲ <할머니를 부탁해> 속  ‘바가지를 쓰고 피란길에’ 편. 출처=갈무리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할머니는 부모와 여동생을 둔 채 어린 남동생과 단둘이 부산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폭격의 위험 때문에 동생에게 철모를 씌우고,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 졸였던 이들 남매는 현재 노년이 되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할머니는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어머니를 만나 돌려주기 위해 어머니의 선물을 꼭 간직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은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메시지다. 특히 그는 만나지 못하는 여동생 순영이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나도 그게 끝인 줄 알았나, 곧 다시 만날 줄 알았지.(…) 이리 될 줄 알았다면 내가 네 손을 밀쳐 내지 못했을 텐데…”라며 탄식한다. 통일을 애타게 바라며 눈을 감는 할머니의 모습에 공감하기란 어렵지 않으며, 새삼 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의 부제는 ‘순정 씨의 기억 속 현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