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영향이 줄어들더라도,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글로벌 무역 거래와 차입, 부채에 대한 달러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영향이 줄어들더라도,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글로벌 무역 거래와 차입, 부채에 대한 달러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연방준비제도의 정책은 아르헨티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단적인 예다. 강달러는 또한 터키,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들도 위협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의 수입, 수출이 달러로 거래되고 있고 부채의 상당 부분이 달러 부채이기 때문이다.

신흥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시장 소란은, 그동안 세계 경제에서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중요한 단층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비록 세계 생산 및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소했지만, 달러는 세계 무역 및 금융 분야에서 그 지배력이 더욱 강력해진 것이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달러화(Dollarization)는 결과적으로 다른 나라의 수입과 부채 비용이 늘어나게 만듦으로써 이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상처를 입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달러 가치의 상승은 왜 올해 세계 경제성장이 이미 휘청거리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달러의 지배력 강화는 미국이 미국 은행 시스템에 대한 이란의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이 나라를 고립시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주로 국내에서 발생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20%를 넘었고 무역과 투자 수입을 포함하는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미국의 금리 상승과 재정 부양책이 더 높은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더 심각하게 확대되면서, 아르헨티나로부터 자본을 이탈시키고 올해 페소화(Peso)를 달러 대비 17%나 떨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아르헨티나 수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지만, 총 수입의 88%가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이라고 하버드대학교의 지타 고피나스 경제학 교수는 지적한다. 따라서 달러가 상승하면 같은 달러 가격에 더 많은 페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또 아르헨티나의 여러 정부 부처가 980억달러의 달러화 부채를 지고 있고 민간 부문에서도 680억달러의 달러화 부채를 안고 있다. 이는 총 GDP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런데 페소화가 떨어지면서 그 빚은 갚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금리를 40%로 올렸고, 급기야 지난 8일 IMF에 300억달러 규모의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아르헨티나의 취약성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이한 상황은 아니다. 고피나스 교수는 세계 무역의 약 40%가 달러로 결제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세계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4배에 달한다. 또 국제결제은행(Bank of International Settlements)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은 총 2조달러의 달러화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가 상승하면서 신흥시장 통화, 주식 시장 및 채권은 모두 매도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달러가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급 효과가 있는 통화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달러화는 수수께끼와 같다. 미국의 금리가 종종 외국 금리보다 낮다 하더라도, 경제 이론에 따르면 통화 변경(환전) 과정에서 결국 그러한 이점이 상쇄되기 때문에 달러화로 차입하는 것이 더 쌀 수 없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이것을 ‘유위험 금리평형’(Uncovered Interest Parity)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와 1990년대의 아시아에서 금융 위기를 겪은 이후, 신흥국 정부는 외화 차입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기업들은, 달러로 수출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여전히 달러를 많이 빌림으로써 자연스러운 위험 회피(Hedge)를 하지 못한다. 달러는 다른 통화와 같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달러는 무역에서 기본적인 통화가 되었다. 터키 기업들이 브라질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면서 모국어인 터키어보다는 영어를 쓰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통화가 아닌 달러로 서로 결제하는 것이다.

고피나스 교수와 하버드 대학의 동료 경제학자인 제레미 스타인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이것이 외국인들이 이자가 거의 없는데도 단지 결제를 하기 위해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익을 상쇄하는 환전 과정 없이 싸게 달러를 빌릴 수 있게 해주는, 미국의 ‘엄청난 특권’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외국 회사들도 달러로 돈을 빌릴 때 이 특권을 일부 공유할 수 있다. 회사가 달러로 돈을 빌리면, 수출할 때나 수입할 때 자연스럽게 달러화로 결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달러화가 저절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시카고 대학교 베커 프리드만 연구소(University of Chicago Becker Friedman Institute)의 새 연구 보고서에서, 마테오 마기오리, 브렌트 나이먼, 제게 슈레거 교수는 27조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사한 결과, 투자자들이 압도적으로 자국 통화나 달러로 표시된 채권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유럽의 국가 부채 위기(Sovereign Debt Crisis) 우려로 유로화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면서, 국제 간 차입에서 달러의 비중은 2008년 45%에서 2016년 62%로 상승했다.

그러나 달러를 빌리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용인된다고 해서 위험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금융연구소(International Finance Institute)의 로빈 브룩스 이코노미스트는, 터키 같은 국가들은 성장의 유혹에 사로잡혀 기업과 은행들이 비용이 들어가는 위험 회피 수단을 준비하지 않고 외화를 무턱대고 빌리도록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터키의 리라(Lira)가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올해 리라는 12% 떨어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물가상승 억제와 리라화 폭락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달 정책금리를 13.5%로 인상한 데 이어 최근에는 환율관리 상한선까지 낮췄지만 환율방어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10%가량 치솟았다. 높은 물가상승률과 경상수지 적자, 선거공약 등에 대한 우려와 함께 통화가치의 급락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중앙은행이 가진 수단을 계속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달러가 지금까지는 지난해 하락한 만큼 많이 상승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달러가 얼마나 더 고공 행진을 할 것인가는 연준이 어떻게 하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8일 연설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은 1980년대와 1990년대보다는 더 안전한 재정 및 통화 정책을 취하고 있는 신흥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관리 가능할 정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준이 미국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해외 위기 촉발 위험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달러의 ‘엄청난 특권’은 중앙은행에 역시 ‘엄청난 책임’을 부여한다고 전 연준 총재였던 제레미 스타인 교수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