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진화
선경직물(1953) ▶ 선경석유(1973) ▶ 대한석유공사(1980) ▶ 한국이동통신(1994) ▶ CDMA상용화(1996) ▶ DMB위성발사(2004)

1979년에 열렸던 SKMS 첫번째 세미나 현장.

2차 석유파동으로 모든 기업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급급하던 때 당시 최종현 회장은
“2000년대 SK가 세계적 수준의 일류 기업이 되려면
모두가 공유하고 발전시켜야 할 기업문화와
경영법이 필요하다”며 SKMS 정립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최종현 회장님은 주말마다 경영기획실 사람들과 연수원에서 끝도 없는 난상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꼬박 4년이 지난 후 SKMS가 만들어졌습니다.”(이노종 전 SK아카데미 원장)

“폴리에스터 필름의 연간 생산량을 보고받은 최종현 회장께서 ‘바로 이거다’라시며, ‘내가 바라던 SUPEX(SKMS의 실천방안) 수준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SUPEX 추구 대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이태화 SKC 전무)

SK맨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SK만의 독특한 경영 기법 SKMS(SK Manag-ement System). 그러나 언뜻 들어서는 대체 이게 무엇인지 쉽게 감을 잡기 어렵다. 실제로 SKMS를 오랫동안 몸으로 체득해 온 SK그룹의 고위임원들도 입사 후 10여년간은 이를 잊고 살았다고 고해성사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원의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선경그룹이 오늘날 국내 4대 그룹과 글로벌 86위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에 대해 학계와 재계에서는 주저없이 SKMS를 꼽는다. 난해해 보이기만 하는 SKMS가 과연 무엇이기에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것일까?

SKMS는 무엇인가
SKMS는 기업관, 기업 경영 정의, 목표, 원칙 등의 규정을 내리고, 기업 경영의 모든 프로세스를 기획·조직·생산 등 11개로 나누어 각각의 개념과 필요성 및 일처리 방법 등을 정리한 것이다.

또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하위 개념으로 목표달성치를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준(Super Excellent)’으로 설정하고 이를 5단계에 걸쳐 하나하나 성취해 결국 목표치에 다다른다는 실제 행동 강령 수펙스(SUPEX)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SK그룹이 해온 모든 일들은 SKMS에서 지향하는 바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수펙스라는 방법을 통해 성취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그룹처럼 마치 하나의 학문적 체계를 세워두고 이를 대대로 그룹 전체의 경영이론으로 적용시킨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이 SKMS는 과연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SKMS는 왜 등장했나
지난 1962년 미국에서 귀국해 경영에 합류한 최종현 회장은 73년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이 유명을 달리한 2년 뒤인 75년 글로벌 기업으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경영기획실’부터 만들었다.

당시 직원들은 ‘미국물’ 먹고 온 회장이 뭔가 다른걸 하려나 보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최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때까지는 기업들이 설비 경쟁으로 우열을 가려왔지만 1970년대부터는 경영기법의 전쟁이 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1975년 어느 날 최 회장은 SK를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골몰해 있었다.

당시의 SK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향후 자신이 꿈꾸는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당장에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SK만의 경영기법이 필요합니다. 외국것들은 적용키가 어려워요.”
최 회장은 손길승 당시 경영기획실 부장 등 임직원들과 학계 인사들을 모아 태스포스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경영기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주말마다 경영기획실 직원들은 최 회장과 토론을 벌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 모두가 경영에 대해 마르고 닳도록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들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79년 3월 국내 기업들이 2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급급하던 때 SK의 전 임원들은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 모이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모인 임원들은 이날 향후 30년간 SK 신화 창조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된 SKMS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SKMS의 놀라운 성과
SKMS를 처음 시행하던 지난 1979년의 SK그룹은 SK케미칼, ㈜선경 등을 주력 사업으로 하는 매출 1조원 안팎의 중견 기업에 불과했다.

SKMS를 정립한 SK그룹은 그 이듬해인 1980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사업 계획의 최종 목표인 석유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1969년 폴리에스터사업 진출 이후 숙원사업이던 석유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석유사업에 대한 구성원의 목표의식 고취, 원유도입선 확보, 재원 마련 등에 대해 SKMS에 따라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대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SKMS’를 정립하던 1979년은 경제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던 때였다”며 “SKMS가 30년이 된 올해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쓰나미로 고통을 받고 있어 SKMS를 근간으로 전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안승현 기자 ziroko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