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감정이 있나요?”는 필자가 인공지능 강연이나 모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소셜 로봇(Social Robot) 또는 감성 로봇(Affective Robot)이라는 이름으로 심심치 않게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과 달리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에는 사뭇 다른 감정(?)을 가지는 것 같다. 아마도 본인이 느끼는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복잡다단한 그런 느낌을, 아무리 인공지능라고는 하나, 한낱 전자장치일 뿐인 기계가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몹시 당황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 그냥 “인공지능은 진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로봇이든 그냥 물건이든 그 대상을 대하는 사람의 감정이입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이상한(?)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거나 인간의 감정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공지능이 실제로 감정을 가진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른바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라는 분야에서 기계가 센서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거나 감정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연구만큼, 기계가 실제로 감정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고 있는지 못한 것 같다. 미래의 지능적인 로봇들은 굳이 감정을 가지도록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데 이성적인 기능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정은 심리학적으로나 뇌과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도 아직 충분히 분석되고 이해된 문제가 아니다. 심리철학에서는 자유 의지(Free Will)와 더불어 감각질(Emotional Aualia)을 가장 어려운 문제(Hard Problem)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 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주장의 중요한 논거로 다루어지고 있고 아주 복잡하고 긴 논쟁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감정(感情)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으로 풀이되고, 구글 사전에는 “주위의 일이나 현상에 대해 느껴 나타나는 기분이나 심정. 곧, 기쁨·즐거움·슬픔·괴로움·두려움·노여움 등의 심리 상태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심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심리학에서는 정신의 작용을 지(知)·정(情)·의(意)로 나눌 때, 정(情)의 영역 전반을 가리킴”으로 돼있다. 다소 다른 뉘앙스가 있기는 하지만 정서(情緖), 느낌, 기분(氣分), 정동(情動), 그리고 마음도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성(感性)은 그러한 능력을 의미한다.

감정은 정신에서 이성과 상대적인 것으로 또는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합리적 판단의 장애물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인지과학에서 감정이 의사결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감정은 마주 대하는 사태에 대한 신체적인 평가 시스템이기 때문에 감정중추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결정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감정은 현재 직면하는 사태에 대해 과거로부터의 축적된 경험으로 생겨나는 무의식적이고도 신체적 평가 반응이다. 의식은 자각의 상태나 감각질이거나 자신 안에 외부 개체 또는 무엇인가를 자각하는 것이고, 감정은 자각 또는 의식할 수 있는 신체적 평가인 셈이다. 감정은 기본적으로 욕구에 비춰진 평가이고 파생적인 욕구를 발생시키고 욕구는 행동을 유발한다. 감정이 매우 친숙할 수 있지만 생경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의식은 이러한 감정을 이성의 대상으로 삼아 분석할 수 있고 분석의 결과에 대해 다른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일어난 행동을 나중에 의식이 합리화한다는 것은 분리 뇌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주하는 사건의 평가는 사건의 순수한 논리적인 구조의 모든 요소가 평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감정은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내용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했다. 감정 없는 이성은 내용 없는 논리적 구조만을 다루는 셈이 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처리할 때 감정 없이도 잘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만 감정 없이 인간처럼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스스로 감정이 없다고 상상하는 것은 마치 ‘박쥐가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같은 사태를 경험함으로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학에서 ‘마음의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은 심지어 거울 뉴론을 통해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을 타고 났다고 한다. 무감정(Apathy)이나 감정표현불능(Alexithymia)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한다. 감정이입(Empathy)이 불가능한 사람이 사이코패스다.

가장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윤리 문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덕적 감정이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장의 비슷한 그림이나 거장의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 예술적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뜨거운 열정에 휩싸인 또는 쓰라린 짝사랑의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이 쓰는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다. 색과 모양, 질감, 음율, 단어와 문자의 뉘앙스들이 복잡한 느낌으로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복잡한 정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한 복잡함의 총체적 평가가 감정이라면 감정은 기억과 기대의 복잡한 정보처리일 것이다(토노니(Tononi)의 ‘의식의 정보통합이론’). 왜냐하면 감정은 의식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참고 : https://en.wikipedia.org/wiki/Emotion).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성된 감정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은 감정이 타고 나는 것이 아니고 두뇌의 여러 신경망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원초적으로 타고난 감정이 있더라도 감정은 학습될 수 있다. 제퍼디 퀴즈 게임에 이긴 IBM 왓슨이나 바둑의 신이 된 알파고 제로가 승리감를 느낄 수 없는 무감정 기계(Emotionless Machine)일지라도 소셜 로봇들은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통한 또 다른 인문학이다. 비록 이것이 가능하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느낌을 알 수 없듯이 그 느낌을 알 수는 없을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