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2001년의 영화 속 대사다. 교실 앞에 불려나온 학생들은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싸다구’의 수준이 달라진다. 요즘 세상은 상상도 못할 일들이지만 ‘그’ 시대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보았고 의미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33년 전 필자의 면접기록

1985년 뜨거운 여름 7월에 군 전역을 앞둔 시점의 대우그룹 입사면접장.

- “아버지 안 계시네?” 입사지원서의 가족 칸에 아버지 칸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질문한 것이다. “예, 15년 전인 국민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 “사범대 출신인데 학교로 안 가고 왜 회사로 취업하려고 하지?”… ”군대생활 3년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몇 가지 복합적인 사정이 있지만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당시 입사면접의 단골 질문이었다. 지금도 50대 이상 정도 되는 경영진은 ‘아버지 뭐하시는 분인가?’라는 질문을 반드시 한다.

 

최근의 대한항공 사건

대한항공 세 모녀 사건이 유명하다. 몇 년 전에 언니 되는 조현아 부사장의 사건이 문제되었다가 조금 잠잠해지는 시기에 동생인 조현진 전무의 물컵 사건이 알려졌다. 나중에는 엄마인 이명희 이사장의 말솜씨(?)가 급격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막말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회사의 이미지 추락이 끝이 없다. 처음에는 이 두 딸이 ‘뭐가 부족해서 저런 행동을 할까?’ 의아했다.

그런데, 엄마의 숨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해가 되었다. 엄마한테 배운 것이다.

 

실제 요즘 면접에서 일어나는 일들

최근 면접을 보는 중에 이력서에 보니 아버지 직업이 ‘사업’으로 되어 있었다. 필자는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물었다. ‘운수업!’ 구체적으로 답하라고 한다. ‘택시’ 라고 한다. 몇 대 정도 하시냐고 하니 그때서야 ‘개인택시 운전’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냥 ‘개인택시’라고 하지 왜 그랬느냐고 하니 묵묵부답이다.

안타깝다.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면접장에 앉아 있는 취준생 또래의 아들딸은 둔 면접관의 기대는 정반대다.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든 자랑스럽게 내어 놓고 고생하는 모습 이야기도 하며, 우리 아빠 도와드리게 “꼭 합격시켜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면접생을 보고 싶다.

그래서, 질문 중에 ‘가족 자랑 해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엄격하신 아버지, 자상하신 어머니’의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구체적으로 지켜보고 하나하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보라. 점수 듬뿍 받을 것이다.

 

취업준비 영역에서 왜곡된 정보와 오해

대학교에서 취업교과목이나 특강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주변의 친구 아버지의 직업에 따라 본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 않아요? 아버지가 공무원, 교사, 직장인, 사업가, 작은 가게 장사 등일 경우 차이가 나지요?”

잠시 생각하다가 “연관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다. 부모님의 직업에 따라 친구들도 생각하는 스타일, 말하는 방법, 친구를 사귀고 옷을 입는 모습, 심지어는 말하는 투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나 약속을 지키는 모습이나 상대를 배려하는 것도 다르다고 생각된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는데, 수많은 직원을 데리고 일해 본 면접관 입장에서 아버지 직업이나 가족 구성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아래는 취준생들이 하는 몇 가지 오해다.

(1) 회사 들어가서 일만 잘 하면 되지 가족하고 무슨 상관이냐?

(2) 부모님의 직업이 대단하고 화려해야 좋아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직업은 약점이 된다.

(3) 아버지가 고위직이면 무조건 합격이다.

가족구성이라든가 아버지, 어머니 ‘직업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보고 배운 것이 무엇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요즘 간혹 언론에 회자되는 범죄행위는 아예 잊어라.

 

부모님을 통해 좋은 것을 배우고 당당하게 공개하라

국가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하자며 가족 칸을 없애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소신 있는 인사담당자라면 가족 칸을 절대 없애지 않는다. 취업은 연애나 결혼에 버금가는 평생의 인연을 맺는 면접인데, 최소한의 가족관계도 모르고 결정할 수 있겠는가?

- 공기업, 공무원 조직이라면 이해가 된다. 많은 부분이 규정에 의해 일하고 주어진 시간에 일하면 된다. 창의성이 오히려 무리가 되기도 한다.

- 업무량이 정해져 있는 분야, 고객에 100% 연동되어 기계적으로 일하는 분야도 이해가 된다. 대형마트의 캐셔, 은행창구 근무자, 식당의 종업원, 생산라인의 근로자. 가족,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실제 이 분야도 따져보면 자율성이 많은 분야지만 양보하고 넘어간다)

- 그러나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일정 수준의 업무영역과 상관의 지시, 기본 방침 정도만 제시되고 70~80%가 본인의 자율성에 따라서 일의 분량이나 질(Quality)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성장환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족구성이나 직업은 반드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여느 가정 같이 평범하면 그냥 물어보는 정도지만, 남다른 상황이나 직업의 경우는 답변에 따라서 결정적인 경우도 많다. 질문한 것만으로 성급하게 짐작하지 않으면 좋겠다.

필자가 면접을 보는 경우, 위와 같이 부모님 직업을 숨기려는 모습이 보이면 스펙(SPEC)에 상관없이 ‘불합격’으로 처리한다. 취업한 이후에 ‘회사’에 대한 자부심도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가족 상황에서는 부모님의 행동이나 처신을 그대로 닮아간다. 그래서 대한항공 세 모녀 사건을 보며 우리가 배우는 것이 많아야 한다. 취준생이든 부모님이든….

이 칼럼의 결론은,

가족의 긍정적인 면(성장과정에 형성된 인성이나 태도 중 기업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대놓고 자랑하라. 단, 남다른 방법으로. 부정적으로 보일 만한 것(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직업이 사회적으로 고달파 보이는 직업, 조직적응이 미숙할 것으로 추정되어 보이는 외동딸 등)이 있으면 더더욱 대놓고 자랑하라. 사회적 통념(痛念, 일상적인 생각들)을 뒤엎기 위해 그동안 해온 남다른 노력을 내세우라.

- “어릴 적부터 이혼한 아빠와 둘이 살며 살림을 챙겨 생활력이 남보다 강해졌습니다.”

- “아빠가 연탄배달을 하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일 나가시는 아버지를 자주 돕다 보니 부지런함도 생겼고, 건강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 “외동딸은 고집이 셀 것 같다고 많이 말하기에, 단점을 극복하려고 매주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수많은 언니동생들과 어울립니다. 때문에 형제가 참 많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장점’으로 뒤집는 노력을 하라. 오히려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