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2015년 일본과의 모든 형태의 통화스와프가 중단된 지 3년만에 한일 통화스와프가 다시 열릴 지 주목된다.

4일(이하 현지시간) 제21차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이 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개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고 앞으로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회의에서 이 총재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를 만나 한일 통화스와프의 재개 가능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나타났다.

▲ 이주열(오른쪽)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오전 필리핀 마닐라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앞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이 총재는 “한일 통화스와프는 정치적 이유로 중단됐다”면서 “중앙은행의 경제협력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치 갈등이 경제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과 더불어 한·중 통화스와프도 연장에 합의한 것이 한일 통화스와프 재개에 긍정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사드(THAAD) 문제로 민감한 상황에 놓여 있던 한국과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연장에 합의했기 때문에 한일 통화스와프의 재개도 큰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한일 통화스와프는 지난 2013년 7월 종료됐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협정(CMIM) 하에서 이뤄지던 원화와 엔화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2015년 2월 연장 합의에 이르지 못 하고 종료됐다. 일본 정부는 독도나 위안부 이슈 등 민감한 사안이 생길 때마다 통화스와프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1997년 IMF 위기 이후 외환 문제에 민감한 한국 정부의 약점을 건드려온 셈이다.

이 총재는 최근 중국과 일본이 통화스와프 재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단됐던 통화스와프를 재개한다면 정치적 이유로 중단돼 있는 한일 통화스와프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구체적인 논의를 재개하는 시점에 대해서 이 총재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상대가 있는 만큼 (논의가) 언제 어떻게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 “일본의 경우 통화스와프 업무 주도권을 중앙은행이 아닌 재무성이 쥐고 있다는 점도 변수”라고 말했다.

통화스와프란 문자 그대로 통화(Currency)를 교환(스와프∙Swap)한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국가의 통화를 미리 정해둔 환율로 일정한 시점에 교환하기로 하는 외환 거래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할 때를 대비한 ‘외화 안전판’으로 불린다. 지난 2월 기준 우리나라가 체결한 통화스와프 규모는 1222억달러 규모로 캐나다, 스위스, 중국 등과의 양자간 통화스와프와 아세안+3개국과의 다자간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