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도도 있고 상당한 매출 규모를 지닌 A사의 신사업 론칭 과정은 짐 콜린스의 ‘버스이론’을 연상시켰다. 짐 콜린스의 버스이론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버스가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하고 거기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게 아니라, 먼저 인재를 모으고 버스를 운행하면서 인재들이 협의와 토론을 통해 목적지를 정하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환경 변화가 극심하기 때문에 미리 한 방향을 정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이 수시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사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보통 규모가 있는 기업의 신사업은 정밀한 시장 조사와 오랜 연구를 통해 플랜을 짜고 신중하게 도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A사의 신사업 전개 과정은 말 그대로 ‘뜨내기’처럼 두서없이 진행되었다. 사장의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상품 전략이 바뀌고 뒤집어지곤 했다.

임원이나 직원 한 명이 시장을 벤치마킹해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오면 다음 매장을 론칭할 때는 또 다른 사업 모델이 되어 있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진행한 사업모델이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론칭한 매장들은 상당한 매출을 올렸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계속 더 효율적이고 시장지향적으로 사업 모델이 다듬어졌다.

이 방식은 일종의 린스타트업이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과정 속에서 계속 사업을 혁신하고 개선해나가므로 가볍게 출발하고 빠르게 변신해나갈 수 있다. 요즘처럼 시장 환경 변화가 종잡을 수 없고 급속할 때는 이 방식이 효율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빅블러 현상이다. 산업 및 업종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스피드와 변화 적응력이 중요하다.

A사가 이런 방식으로 신사업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개발 인력이 튼튼하고 사업자가 다양한 점포와 입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간 그런 식으로 사업을 전개한다면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 증가는 물론 브랜드 전략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는 서사적 방식인 에픽 마케팅이다.

에픽마케팅은 사업을 장대한 서사극처럼 풀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작할 때 결말까지 미리 내다봐야 한다. 장대한 스토리를 만들어놓고 하나하나씩 풀어내는 방식이다. 정밀한 시장 조사에 기반해서 중장기적인 성장전략까지 수립한 후에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다.

수가 낮으면 경쟁자들에게 쉽게 모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미리 대하드라마 같은 장대한 스토리를 계획해두고 이에 맞춰 단계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준비된 사업자는 추격하기가 쉽지 않다.

린스타트업이 2단계 3단계에 대한 계획 없이 수시로 혁신하면서 사업을 풀어내는 방식이라면 에픽마케팅은 2라운드는 물론 5라운드까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방식이다.

피터 드러커가 기업가 정신에서 강조하는 것은 후자이다. 사업 시작 전에 멀리 내다보고, 여러 가지 사업 전개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각에 대한 대응방식과 중장기 전략까지 수립해서 사업을 전개하면 예기치 못한 리스크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서사적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과 인력 자원이 든다. 사업이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출발이 너무 무거워지는 것이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재미있는 것은 현대 경영에서는 두 가지 모두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경영자의 성격이나 개성에 의해서 두 가지 방법이 선택되었다.

무모하고 용감하며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창업자들은 린스타트업이나 버스이론 방식을 더 선호한다. 반면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적확한 전략을 선호하는 이성적인 창업자일수록 서사적 방식으로 사업을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창업이나 사업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창업자나 사업가의 스타일이 아니라 업종의 특성에 따라서 사업 방향을 정해야 한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획기적이며 새로운 아이디어로서 시장에 경쟁자가 많지 않고 새로우며 사업 방식을 변화시키는 게 비교적 손쉬운 분야는 린스타트업 방식이다. 하지만 이미 경쟁자가 많고 쉽게 모방될 수 있으며 노하우가 오픈된 분야에서는 에픽 마케팅이 더 적합하다. 가령 경쟁자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핫도그 사업을 한다면, 경쟁자가 늘어나서 사업이 진부해졌을 때 새로운 차별화를 할 수 있는 다음 계획을 미리 보유하고 있을수록 지속 경쟁우위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 경쟁자가 늘어나 자기 사업모델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때서야 새로운 차별화를 고민한다면 경쟁자에게 쉽게 추격당할 수 있다.

2017년에 히트한 <신과함께>라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관객들은 <신과함께>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테마의 속편이 제작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제작자는 1편 죄와 벌, 2편 인과 연 등 다양한 주제의 속편을 미리 계획해둔 것이다.

시장에서 소자본 창업자들을 울리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새로운 업종의 짧은 유행이다. 특히 가맹본사의 도움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그런 현상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이스크림, 핫도그, 저가 주스, 빙수, 스몰비어 등 히트 업종이 나오면 모방 브랜드가 줄을 잇는다. 경쟁점이 늘어나면서 해당 업종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짧은 시간에 신선함이 사라진다. 단사이클 업종이 늘어나면서 신사업이 진부한 업종이 되는 데 걸리는 기간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발주자인 영세한 소자본 창업자들의 몫이다.

창업자들은 투자비가 적게 들고 운영이 쉽고 간편한 업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맹본사들은 단기간에 가맹점을 모집하기 위해서 사업을 더 쉽고 간단한 모델로 만들어서 창업자를 유혹한다. 특히 최근에는 사업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으로 인수 합병을 노리고 적당히 가맹점수를 늘려서 가맹본사를 매각할 의도로 사업을 전개하는 가맹사업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은 사업 초기에 파격적인 지원과 혜택을 제공하면서 사업 성공가능성보다는 가맹점 수를 늘리는 데 더 집중한다.

진입장벽이 낮고 아이디어에 기반한 사업일수록 성공해도 문제고 못 해도 문제다. 성공해도 쉽게 모방당한다면 경쟁우위를 지속시키기 어려워 경쟁자의 거센 추격을 받거나 금방 식상해져 고객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한계를 가진 사업모델로 도전할 것인가? 완벽하고 장기적인 그림을 가지고 도전할 것인가? 당신은 어떤 성향이 강한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전략적 선택을 사업가 개인의 성향에 맡기면 안 된다. 사업 특성에 따라서, 사업의 단계에 따라서 두 가지 방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한다.

훌륭한 사업가는 큰 그림도 볼 수 있어야 하고 디테일에도 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유능한 창업자나 경영자라면 버스이론과 에픽마케팅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