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강자를 만드는가> 정회석 지음, KMAC 펴냄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 이른바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다. 약 140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지구 생태계에서도 모두가 쫓고 쫓기며 생존경쟁을 벌인다. 저자는 46억년간 이처럼 치열하게 지속되어온 자연의 다양한 생존 방식이야말로 최고의 전략교과서라고 말한다. 책에 소개된 흥미로운 생물들의 생존전략을 소개한다.

▲박쥐=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흡혈박쥐 데스모두스 로툰다는 야간에 말이나 당나귀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그런데, 이틀을 굶게 되면 사흘째 되는 날 죽게 된다. 하지만 이 흡혈박쥐는 굷주린 박쥐에게 피를 나눠준다. 혈연관계가 아닐지라도 생애의 60% 이상 기간을 함께 지낸 이웃 박쥐에게는 피를 나눈다. 이 정도의 신뢰가 생긴 상태라면 나중에 피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모기=호환과 마마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 2위는 바로 사람이다. 연간 살인과 전쟁을 통해 인간은 다른 인간 47만5000여명을 죽인다. 1위는 그보다 압도적으로 희생자를 많이 발생시키는 모기다. 모기는 말라리아 뎅기열 뇌염 등을 퍼뜨리며 연간 72만 5000명을 희생시킨다. 인간을 무는 것은 모두 암컷 모기다. 알을 낳기 위해 동물을 피에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려는 것이다. 피를 빨 때 매우 정교한 방법을 구사한다. 침의 끝으로 적당한 모세혈관을 찾은 뒤 10~20개의 이빨을 사용해 피부 깊숙이 침을 찌르고는 곧바로 혈액응고방지제·마취제·소화효소를 주입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피를 빨리면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흰허리독수리=아프리카 사막의 산지나 암석지대에 살며, 절벽이나 동굴에 둥지를 틀고 바위너구리 등 포유류와 조류를 잡아먹고 산다. 흰허리독수리는 항상 두 개의 알을 낳는다. 첫 번째 알은 두 번째에 비해 3일 정도 일찍 부화된다. 먼저 태어난 독수리 새끼는 3일 뒤 둘째가 부화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무자비하게 쪼아 죽인다. 조사 결과, 200개 이상의 흰허리독수리 둥지에서 둘째가 살아남은 경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먹이가 부족한 극한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이 더 센 개체가 약한 개체를 제거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비단잉어 코이=코이라는 어종은 작은 어항에서 기르면 5~8㎝ 정도 자란다. 하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서 키우면 15~25㎝까지 커진다. 강물에 방류할 경우 90~120㎝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코이는 물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성장억제호르몬을 분비한다. 만약 어항처럼 물이 양이 적고 고여 있다면 그 농도가 짙어 성장이 멈춰지게 된다. 반면 수족관처럼 물의 양이 많거나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성장억제호르몬이 희석되어 몸이 커지는데 장애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강물에서는 위험요인도 많고 다른 종들과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기에 덩치와 힘을 키워야 한다. 환경에 따라 몸집을 달리 하는 것을 ‘코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잡초=잡초를 아무리 뽑고 뽑아도 다시 자라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해살이 덩굴식물 새콩은 들녘, 길가, 밭 언저리 등에 자생한다. 새콩은 생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지상과 지하에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지하의 열매 중에는 지상 열매보다 2배 큰 것이 하나 포함돼 있다. 지상 열매들이 잘려나가더라도 후손을 남길 수 있도록 플랜B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서양민들레는 흙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그런데 민들레는 씨앗이 여물기 전 사람의 발길이나 차량 바퀴에 의해 꽃봉오리가 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예 잘린 꽃봉오리에서도 씨앗을 만들 수 있도록 진화했다.

▲회색가지나방=회색가지나방은 환경이 깨끗한 자연 상태에서는 흰 개체를 낳는다. 그래야 몸을 나무 밑동에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환경변화를 염두에 두고 검은 색 개체도 일정 비율 함께 낳는다. 만약 주변 환경이 매연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검은 색 회색가지나방의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톰슨가젤=열대초원 사바나에서 소 사육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소떼는 초식동물보다 물을 많이 마셨다. 물을 찾아 계속 옮겨 다니느라 사바나 지역의 풀을 밟아 죽였다. 축축한 분뇨를 배설해 분뇨가 마르는 과정에서 식물들이 말라 죽고 토양은 물이 스며들지 않는 땅덩어리로 변했다. 반면 톰슨가젤의 분뇨는 마른 덩어리다. 지상 식물들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는다. 분뇨의 분해도 빨라 땅의 영양분으로 쉽게 전환된다. 톰슨가젤은 이런 방식으로 사바나의 토착 초식동물로 생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