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직스쿨을 운영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스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수업다운 수업을 한 적은 거의 없다. 진행 방식의 대부분은 1:1로 만나서 이루어지는 2시간 남짓의 코칭이기 때문이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는 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직’이라는 테마는 결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그렇게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목적이 있다. ‘지금보다 나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자기 계발인지 개발인지 모를 것을 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며, 이는 현재 보다 나은 직장, 연봉, 여러 조건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이는 사회가 일정 부분 기여 아닌 기여를 하는 것 같다. 유년시절부터 타인과의 경쟁에 익숙해진 습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경쟁 구도가 아니면, 그 경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남 또는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제의 나와도 경쟁하고, 옆자리 동료와도, 다른 업계의 다른 사람들, 심지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그들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경쟁은 조직에 들어오면 그 범주와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일만 잘하면 될 줄 알았지만, 읍소를 포함, 다양한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뒤처지면 큰일이다. 크고 작은 파벌을 구성해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것, 누가 더 사내 정치에서 우월함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승진과 승급과 인사고과 등이 달려 있다.

의아하게도 이직스쿨을 찾아오는 이들은 그런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물어보려 오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이 바라는 삶과 현재의 일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갈등의 고리를 풀기 위해 찾아온다. 그중에 위와 같은 문제도 일부 있다.

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단순히 ‘직장’을 옮기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지 상담하려는 유형으로 전체에 절반 정도이며, 또 하나는 도무지 자신에게 맞는 직무 또는 조직이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를 찾기 위해 오는 유형, 그리고 나머지가 소수이지만 현재의 삶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거의 극단적 선택까지 하려 했던 이들이다.

모두들 공통적으로 자신의 삶 그리고 일, 이 모두를 포함한 커리어에 대해 가진 편견과 오해로 길을 잃었다. 잘 살아보려 했지만 여러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했던 여러 활동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직장을 옮기는 이직 활동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된 다양한 역할 속에 나와 타인의 기대 수준을 충족하다 보니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중에 단순히 직장을 옮기려는 고민을 가진 이들은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많이 가진 이와 충분히 가졌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이다.

전자는 과도한 능력을 위한 투자로 인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유형이다. 이들은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에 비해 많다. 적성도 재능도 많아서 할 수 있다고 믿거나 실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이는 말뿐 아니라 실제 증명한 경험도 다수 있다. 그래서 은연 중에 자기계발인지 개발인지 모를 것들을 현장에서 이뤄냈다. 이제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되지만, 욕심 때문에 하나라도 포기하기 어렵다.

후자는 의지가 본래 약하거나, 조직에 깊숙이 적응되어 다른 선택을 전혀 못하는 유형이다. 따라서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고, 지금 현재에 익숙해지며,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자칫 놓칠까 겁이 나서 다음 선택이 망설여진다. 당연히 기존의 선택을 유지하려고 하며, 번복하거나 바꾸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둘의 공통적 문제는 스스로를 모른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삶, 그 속의 일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충분한 고민 없이 선택했고, 그 선택을 유지하려다 보니 지금 하는 선택들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지금 역할에 남들의 기대 수준을 충족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그에 부합하는 나름의 ‘전략’ 없이 되는대로 선택을 했더니, 현 상태가 되어버렸고, 그 상태란 ‘너무나 많이 갖거나’, ‘스스로 너무 덜 가졌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과도하거나 부족한 ‘자기계발, 또는 개발’이 바라는 삶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발은 사물이나 기술에 비유하면 ‘유용하게 만드는 것’을 말하고, 이를 사람에 비유하면 지식 또는 재능 등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정 부분 갈고 닦는 노력이 필요하고, 철저하게 ‘전략적’ 움직임이 담보되어 있다. 그게 남이든 나이든 어떠한 목적과 의지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 기술 등을 연마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에 쓰기보다는 사물이나 실질적인 제품과 서비스 등을 개발할 때 사용한다. 사람에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계발은 개발과는 확연히 의미가 다르다. 의미상 ‘일깨워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일종의 ‘동기부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에게 깨우침을 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 타인을 위한 활동이다. 남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이 원하는 바를 깨우쳐 주고, 나아가 스스로 알아서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자기개발’의 의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계발’이 필요하지만, 이를 ‘개발’을 통해서 계발까지 이루려는 데 대부분 문제가 있다. 본인 스스로 필요한 것이 스스로가 가진 ‘기술이나 기능의 개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깨우침 자체가 굳이 필요 없다고 믿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충분한 동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하지만, 그 동기가 개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나에게 장착하기 위한 자기계발을 위한 개발활동에 매진한다. 결국 한정적으로만 활용 가능한 기술을 갖게 되고, 짧아진 기술 수명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의 직장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적절한 계발과 개발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이를 위해 꼭 먼저 밟아야 할 과정은 있다. 자신이 살고 싶은 뚜렷한 모습, 그 속의 일하는 모습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현실적인 입장에서 그려보는 것이다.

너무 뻔한 대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스로가 만든 삶이 아니다.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거나,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쟁취하면서 얻은 삶이기에 나름의 사회 통념적으로 정해진 규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의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남들의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겪어야 할 시행착오와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을 기꺼이 나 그리고 남에게 기꺼이 헌납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용기까지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가진 생각을 삶 속에서 일터에서 기꺼이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스스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직장 생존력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직스쿨을 운영하며, 의뢰인들을 만나서 꼭 함께 하는 것이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표현을 기록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의 활동을 도와주면서 느끼는 것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며 자신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행복한 굴레를 찾고, 그 굴레를 지속시키기 위해 일과 연계해 더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는 나만의 방법론을 찾는 것이다.

지금 만약 이직 또는 커리어 관련 고민을 안고 있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 그러한 활동은 단순 체험이 아닌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딴짓이면 가장 좋다. 우리는 때론 ‘딴짓’을 통해 새로운 영감과 힘을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