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일상가젯 - 일상을 바꾸는 물건 이야기. 라이카 CL 편

라이카. 카메라와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 글자가 지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듯하다. 굳이 ‘왜 이 브랜드가 위대한가’에 대해 열변을 토할 필요가 없다. 라이카는 그런 브랜드다.

근 100년 역사를 지닌 라이카는 박제된 전설이 아닌, 현재진행형 브랜드다. 꾸준히 시대 흐름에 맞춘 신제품을 출시하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라이카 카메라는 여전히 소장 욕구를 한껏 자극한다.

▲ 사진=노연주

비교적 최근에 나온 라이카 CL 역시 가지고 싶어서 사람을 안달나게 만드는 카메라다. T 시리즈(T, TL, TL2)가 라이카의 ‘변화’를 상징한다면 CL은 지독히 라이카스러운 라이카다. 완전히 새로운 인상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CL은 T보다는 M과 닮았다. 라이카 ‘최고 존엄’ M 시리즈 말이다. 생김새 때문인지 간혹 미니 M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차이점이 분명하다. 형제처럼 닮았지만 CL이 M보다 작고 가벼우며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라이카가 디지털 시대를 산책하는 방법

더군다나 CL은 RF(Range Finder) 방식이 아니다. M 마운트도 아니며, 풀프레임 센서를 갖추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M 흉내만 내고 가격을 후려친(?) 타협의 산물인가? 틀림없이 아니다.

CL엔 M과 같이 클래식 라이카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카메라 시장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카메라란 물건은 자꾸만 위상이 모호해지고 있다. 폰카메라와 SNS의 발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소비하는 문화 자체가 달라진 탓이다.

▲ 사진=노연주

카메라 브랜드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에 집중한다든가 오버 스펙을 과시한다든가. 간혹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라는 본질과 멀어지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반면 라이카는 본질에 끊임없이 집중해왔다. 꾸밈 없이, 사진 찍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해준다. CL 역시 마찬가지다.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다이얼을 수동으로 돌려가며 프레임에 무얼 담을지 몰입하게 된다.

라이카의 또 다른 핵심은 렌즈 아니겠는가. CL엔 TL, SL 렌즈군은 물론 빈티지 라이카 M 혹은 R 렌즈까지도 물릴 수 있다. 덧붙이자면 CL은 APS-C 포맷 바디이며(덕분에 작고 가볍다), 236만 화소 전자 뷰파인더는 광학식 뷰파인더와 비교해 크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 사진=노연주
▲ 사진=노연주
▲ 사진=노연주

 

#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는 카메라

CL과 함께 여기저기를 서성거렸다. 사진 찍기 좋은 봄날이다. 폰카메라의 간편함에 취한 탓인지 초반엔 어색함이 있었지만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조작성이 직관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새 세상과 나 사이엔 CL이 존재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폰카메라를 따라, 갈수록 다루기 쉬워지고 있다. 폰카메라처럼 대형 LCD 화면을 보고 터치를 통해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A/S/M 모드보다는 P나 오토가, 뷰파인더보다는 LCD 라이브뷰가 환영받는다.

CL 역시 오토 모드를 지원하며, 품질 좋은 터치식 LCD를 탑재한다. 자동 초점 기능도 빠릿빠릿하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촬영자는 수동 모드에 손을 댄다. LCD 대신 작은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본다.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며 셔터 찬스를 탐닉한다. 굳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라이카 매직’이라고 부르고 싶은 현상이다. CL을 비롯한 라이카 카메라 이런 수고로움을 자처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지게 된다. 막무가내로 셔터를 눌러대는 것이 아닌,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식의 잠언을 수용하는 진중한 태도로 탈바꿈이 일어난다. 자세가 달라졌으니 좋은 사진을 건질 가능성도 당연 높아지겠지.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 라이카 CL로 찍은 샘플. 사진=조재성

 

#사진과 사랑에 빠지다

아무리 M보다 훨씬 싸다고 하지만 CL도 여느 라이카처럼 필드에서 막 굴리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좋게 생각하자면 그 덕에 더욱 신중하게, 영혼을 담아 셔터를 누르게 되는 게 아닐지.

물론 CL이 불편한 카메라는 아니다. 예컨대 내장된 와이파이 모듈은 지극히 트렌드를 반영하는 요소다.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즉각 올리길 원하는 요즘 유저들은 이런 기능조차 없다면 고민 없이 아이폰을 카메라로 사용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정리하자면 ‘미니 M’ 라이카 CL은 고민 없이 찍어댄 사진으로 가득한 스마트폰 갤러리를 보고는 회의감이 몰려올 때 이를 극복할 확실한 대안이다. CL은 사진 찍는 행위를 좀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