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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스토리를 깔고 앉아 스토리를 찾아 헤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5.08  10:53:14
   

우리에겐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반면 영화와 공연계에서는 외국 원작들에 밀려 국내 창작물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들을 한다. 그러면서 스토리 산업 규모를 얘기한다. 이미 201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 세계 스토리 산업의 규모는 1조3566억달러로, 자동차 산업의 1조2000억달러를 이미 추월했고, 8000억달러인 IT산업의 두 배에 가깝다고 한다. 한 마디로 스토리 산업이 첨단산업의 매출 규모를 뛰어 넘고 있다.

누가 더 많은 스토리 자원을 확보하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 산업의 성공이 좌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그것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스토리 자원을 깔고 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세계 스토리 사장에서 우리나라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2.5%에 불과하다고 볼멘소리를 해댄다.

일상생활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무관심해지기 쉽다. 경복궁이, 광화문이 그리고 사대문이 그렇다. 얼마나 근사한 이야기로 각색하는가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이미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오한 스토리 콘텐츠를 갖고 있다.

 

잊혀진 세계 최고의 계획도시, 조선 500년의 수도 서울

재개발 이전 청진동, 수송동이 있는 종로통은 어지럽기 그지 않던 난개발지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왕궁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가 왜 이럴까?’ 또는 ‘우리 선조들은 원래 이렇게 감각이 없던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느낌들을 가졌을 것이다. 필자도 오랫동안 그 속에서 일해오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새로이 접한 뒤 필자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또 조선의 수도 한양이 도시 전체 설계에서부터 궁의 작은 문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설계된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

정도전은 역사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왕권을 저해하려는 무리의 수장쯤으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그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한양의 도시계획과 왕궁은 상당한 의미를 담고 있다. 나들이 장소쯤으로 전락해 버린 왕궁이지만, 그 의미를 알고 나서는 경외심이 절로 든다.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 왕과 나라가 잘 되었으면 하는 의미까지 생각한다면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도시가 바로 한양이 아닐까, 그리고 그 중심에 경복궁이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한양은 국토 중앙에 위치하고 한강과도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고 또 넓다. 북악을 주산으로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상, 안산인 남산이 있으며, 내명당수 청계천과 외명당수 한강이 흘러 풍수상으로도 명당이다. 거기에 도시계획을 정도전이 총지휘했기 때문에 사대문 구석구석에 그의 숨결과 채취가 스며 있기도 하다.

중심도로인 세종로, 태평로와 종로의 골격도 이때 결정되었는데, 태평로에 해당하는 광화문 남쪽 거리에는 좌우로 6조와 삼군부를 비롯한 중앙관청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동서대문을 연결시키며 중심부를 관통하는 운종가(종로)에는 상인들이 자리 잡도록 했다. 이 종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북촌이라 해 관청과 상류층 주택가가 형성되었고, 남쪽인 남촌에는 상인이나 하층민의 거주지가 자리 잡았다.

이런 대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애민사상이 나타난 작품이 바로 피맛골이다. 피맛골은 종로 1가에서 6가까지의 큰 길가에 말 한 마리가 겨우 다닐 정도의 좁고 긴 뒷길을 말한다. 고관대작들의 행차 같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도록 한 ‘서민 전용도로’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맛골 하면 서울 시내 맛집 거리의 대명사였다.

1395년 10월 7일, 우리는 역사에 이렇게 정확한 년도와 날짜까지도 알 수 있다. 태조는 궁의 완공을 축하하는 연회자리에서 궁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했다. 이에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편에 있는 ‘이미 술로 취하고 덕으로 배불렀으니, 임금이여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고 하며 한 시를 읊조리며 경복궁으로 지을 것을 청했다. 가장 적절한 구절을 골라낸 정도전의 번뜩이는 천재성이 녹아 있는 궁명이다.

왕실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각 건물의 이름들도 지었다. 대표적인 예로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처리하는 전각을 근정전이라 하고 그 문을 근정문이라 했다. 근정전은 그냥 부지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 임금이나 고위직은 혼자 다 하듯 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재상이나 관료를 잘 선임해 위임해야지 모든 일을 자기 혼자만 부지런을 피운다고 좋은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정전은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라는 의미에서 바르게 생각하라는 뜻이며, 침전인 강녕전은 편안할 강에 편안할 녕으로 편히 지내라는 의미 같지만, ‘안일한 것을 경계하고 공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다. 사실상 임금에 대한 압박이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강녕전 침실 네 벽에 경전과 역사책에서 글귀를 인용해 붙이고 교훈을 삼도록 했다.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신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가 있을까?

근정전 앞의 문은 정문이다. 단순히 메인 게이트로서의 정문이 아니라 바른 문이다. 명령과 정교가 모두 이 문을 통해서 나가고 사특하고 기이한 말은 문을 닫아서 끊으라는 의미이며, 문을 열어서 사방의 어진 인재를 오게 하라는 의미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경복궁에는 모든 것들의 이름 하나도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다.

 

동서남북대문에 종각까지, 인의예지신이 녹아 있어

정도전은 궁궐에 이어 1396년부터 도성 건설에 착수한다. 그는 직접 17㎞의 도성 설계까지 완성했다. 주역의 5행 방위에 맞춰 성문 이름을 지었다. 남대문은 예(禮)를 취해 숭례문, 동대문은 인(仁)을 취해 흥인지문, 서대문은 의(義)를 취해 돈의문, 북문은 지(智)를 취해 소지문 (이후 숙정문으로 개명)으로 지었다.

중앙에 위치한 종로의 종각은 오행 중의 신(信)을 취해 보신각이라 명했다. 이로써 한양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다섯 가지의 덕을 상징하는 도시가 된 것이다. 한양은 도시계획에서부터 동네 이름 그리고 각각의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유교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 국가의 태평성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어려 있는 세계 최고의 도시다. 단언컨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대단한 도시를 서울 말고 세상 그 어떤 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서양 역사의 맏형 격인 영국의 버킹엄 궁전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시에 있는 영국 왕의 관저로 18세 초에 버킹엄 공작가문을 위해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 쉽게 말해 버킹엄 공작의 집이라는 의미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은 루이 14세가 당시 막강 권력의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의 성인 ‘보 르 비콩트’를 시기해서 전 유럽을 압도할 만한 새 궁전을 짓게 했는데, 그게 베르사이유에 지어졌다. 미국의 백악관은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펜실베이니아에 있는데, 1800년 제2대 대통령 J. 애덤스 때 완성되어 1814년 대영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 후 외벽을 하얗게 칠한 데서 명칭이 생겼다. 그러다 제26대 루스벨트 때 정식 명칭이 됐다. 이른바 ‘하얀 집’이다.

동양에선 자금성이 유명한데 직역하자면 ‘자색의 금지된 성’이다.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 때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이전하고 1407년에서 1420년까지 대규모 공사를 감행해 성을 지었다. 다행이 청이 불살라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기에 남아 있다. 자금성은 총 9999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8886칸이다. 규모가 경복궁의 10배라며 엄청난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는 경복궁의 2배 정도의 크기로 건축물 구조상 뻥 뚫려 있기 때문에 넓어 보일 뿐이다. 왕이 공식 업무를 보는 외전과 왕과 왕비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전으로 분류되는데, 외전은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으로 구성되고, 내전은 건청문,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으로 구성된다. 이런 명칭은 황제의 권한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일본 황거는 천황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궁성으로, 원래 에도성으로 메이지유신 뒤부터 천황이 살기 시작했다. 성곽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무너진 것을 1986년에 다시 지었다. 1457년 오기가야츠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 오타 도칸이 축성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간토지방을 평정한 후에 에도로 입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세이타이 쇼군이 되었고, 그 후 에도성을 근세 성곽으로 개축했다. 도쿠가와 이데타다, 이에미츠 3대에 걸쳐 전국의 많은 다이묘를 동원해 성의 중추부에서 외곽을 둘러싸며 축성했고, 그 결과 장대한 성이 되었다. 결국 에도에 있는 성이라는 뜻이다.

조선 개국 공신인 정도전은 왕조를 설계하고 도시를 설계하고 <조선경국전>을 지어 통치규범까지 설계했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에게 살해되며 그의 가치는 침몰했고, 이후 467년 동안 역적으로 몰렸다. 그가 살던 집은 마구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1970년대까지 서울 경찰청 기마대 자리로 쓰였다. 수송동 146번지로 지금 종로구청 정문 앞 서쪽 화단 부근이라 한다. 역사는 이처럼 무심하게 이어진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의 스토리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생활과 너무 가까워서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지만 없는 스토리를 지어내서 열광하는 외세를 부러워하지 말자. 우리는 있는 것만 잘 활용해도 이미 세계 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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