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그때 위기관리를 해봐서 압니다. 홍보실에서 빨리 사과하자, 나가서 고개 숙이라고 해서 그 조언을 대표님이 다 따랐어요. 그런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전혀 위기가 관리되지 않았거든요. 저희가 위기관리 원칙이나 홍보실 조언을 듣지 않게 된 게 그때부터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 몸에 상처가 났습니다. 깊은 상처 같아 보입니다. 피부가 찢어져 피가 나고 있습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일단 응급처치를 하라 하죠. 집에 상비해 놓았거나 인근 약국에서 얻은 약솜, 소독제, 거즈, 반창고, 붕대 등을 가져와 응급처치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상처가 이런 간단한 응급처치로도 이내 진정되고 아물기 시작합니다. 연고 정도를 계속 발라주며 새 살이 돋기를 기다립니다. 운 좋은 케이스이기도 하지만, 상처가 생각보다는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의 상처는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아물 기세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독을 하고 연고에 거즈를 붙여 놓았는데도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든지, 상처 속이 부어오르는 추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국 병원에 가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의 상처는 응급처치 후 살짝 안정되는 것 같더니.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고, 환자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빠른 조치를 하려 했지만, 상처를 통해 온 몸에 퍼진 독 때문에 사망에까지 이르는 결론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이 세 경우에서 ‘응급처치’란 어떤 의미가 될까요? 조치를 취했으니 좋아진 것일까요? 하지 않았으면 상태가 더 안 좋아졌을 조치일까요? 해봤자 쓸모없는 짓일까요? 어떤 의미일까요? 응급처치를 바라보는 시각과 의미는 각 상처의 타입이나 심각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응급처치 자체를 ‘할 필요 없는 쓸 데 없는 짓’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초기에 해야 하는 프로세스로 이해하는 것이죠.

지금 질문을 인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해봤는데 사과나 고개 숙임 등이 효과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할 필요가 없다’는 단언은 상당히 아쉬운 시각입니다. 또한 향후 발생할 위기 대응에 있어서도 권장되지 않는 시각입니다.

위기관리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사과할 일이 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적시에 하면 더욱 좋습니다.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그 피해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피해를 적시에 변제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람이 우연히 남을 슬프게 했거나, 화나게 했거나, 아프게 했다면 스스로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으니 그런 ‘마땅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더욱 더 해당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야 하는 그 ‘마땅한 일’이란 위기관리의 끝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 어떤 마땅한 일만 하면 불타오르던 큰 불이 마법처럼 사라진다고 확신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만약 위기 시 위기관리 주체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 적시 진행된다면 그로 인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입니다.

질문 속의 사과와 고개 숙임이 만약 아무 효과가 없었다면. 그 실패 원인이 사과와 고개 숙임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해당 위기의 성격이 그것만으로는 관리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사과와 고개 숙임 이후 당연하게 해야 할 후속 조치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과와 고개 숙임 그 자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더욱 정확한 의미로 사과와 고개 숙임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응급처치와 비슷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