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철강 산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원인은 자명하지만 해결책은 묘연하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5G, 스마트폰 산업은 철강산업이 본받아야 할 타산지석이다. 

▲ 러시아에 문을 연 삼성전자 갤럭시 스튜디오 출처 삼성전자

기술 초격차와 표준, 그리고 연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특히 핵심인 D램 시장만 보면 두 회사 합쳐 모두 70%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메모리 반도체의 가치가 급등하는 가운데, 두 회사의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률은 50%를 넘나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매출 60조5600억원, 영업이익 15조64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반도체에서만 영업이익 11조5500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D램은 11라인의 생산 제품 전환으로 전분기 대비 출하량이 감소했지만, 32GB 이상 고용량 서버 D램과 저전력 LPDDR4X 기반의 uMCP, HBM2 등 고부가 제품 시장에 집중해 실적을 개선했으며 낸드플래시는 64단 3D V낸드플래시 공급이 탄탄하다.

SK하이닉스도 활짝 웃었다. 올해 1분기 매출 8조7197억원, 영업이익 4조3673억원을 거뒀으며 2분기 연속 영업이익 4조원 돌파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률 50.1%를 달성했다. 글로벌 IDC와 연결된 서버용 제품 중심 구성의 D램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낸드플래시는 기업용 SSD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시킨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금의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결정적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찾아온 장면과 수요와 공급의 조절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차적인 설명이다. 핵심은 치열한 연구개발에 이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 있다. 일명 기술 초격차 전략이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플레이어는 일반적으로 상위 톱5 기업만 회자되지만, 사실 2선급 플레이어도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벽을 넘으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절대 1선급 플레이어가 되기 어렵다. 미세 공정 기술부터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2선급 회사들과 손을 잡기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만의 난야와 같은 2선급 플레이어들이 굳이 프리미엄 D램을 원하지 않는 파트너들과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중국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세 공정 기술부터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삼성전자 차량용 '1 0나노급 16Gb LPDDR4X D램' 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쟁사를 따돌리기 위해 항상 ‘한 단계 높은’ 기술력을 추구한다. 삼성전자가 4월 25일 공개한 자동차용 ‘10나노급 16Gb LPDDR4X D램’을 봐도 알 수 있다. 무려 125도의 고온을 버틸 수 있으며 10나노급 D램으로는 유일하게 오토그레이드 1 적용을 받았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전세원 전무는 “이번 16Gb LPDDR4X D램 양산으로 글로벌 자동차 고객들에게 역대 최고의 신뢰성·속도·용량·절전 특성을 모두 만족하는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게 됐다”며 삼성전자의 기술 초격차 전략을 설명했다.

경쟁사의 추적을 불허하는 초기술 격차에 이어 중요한 게 표준이다. ‘표준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술 표준을 통해 시장 우위를 점하는 전략은 탁월한 선택이다. 국내 통신사들의 5G 로드맵에 힌트가 있다. 대한민국 5G 상용화 시기는 2019년이며, 이는 세계의 5G 상용화 일정인 2020년과 비교해 1년 빠르다. 5G 상용화가 선언돼도 당장 전국을 커버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표준 경쟁에 앞서나갈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물론 어려운 길이다. 차이나모바일은 중국 최초 5G 중앙랩을 설립했으며 미국과 유럽 모두 5G 표준을 위해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는 1년 빠른 5G 상용화를 위해 빠르게 전열을 추스리고 있으며 이들은 2019년 5G 상용화를 위해 글로벌 표준 논의에 공격적으로 개입하는 중이다. 기술 초격차에 따른 가이드라인 설정, 즉 표준을 잡으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절대명제다.

기술 초격차를 무기로 과감한 연결을 시도하는 것도 무기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 갤럭시 신화는 자체적인 폼팩터 기술의 확장은 물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경쟁력을 빠르게 체화하는 중이다. 단순한 스마트폰 이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오프라인 유통업체가 온라인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견제하고, 스타벅스의 비전이 PC방을 잠식하는 이종경쟁 시대다. 기술 초격차를 통해 표준까지 장악하려는 시도가 벌어진 후,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B2B와 B2C 분야로 확장하는 것은 ‘모든 산업의 모든 산업에 대한 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리셋과 과감한 오픈 생태계

국내 반도체와 통신, 스마트폰의 강력한 존재감은 기술 초격차를 중심으로 표준과 연결성을 강화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과감한 리셋정신이다.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의 단초를 제공한 후쿠다 다미오는 2015년 “삼성의 미래는 리셋에 있다”고 역설했다. 기술 초격차를 발판으로 삼아 시장 장악에 시동을 건 후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랐을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결단’을 주문한 셈이다. 이는 다시 초기술 격차 전략의 연료가 되어 삼성의 엔진을 강력하게 구동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오픈 생태계 전략도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많은 전자거인들은 지금도 자기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플레이어와 손을 잡으려 노력한다. SK하이닉스는 외부 아이디어 수집에도 열중이다. ‘반도체 혁신아이디어 공모전’을 2년 연속 개최하며 스스럼없는 오픈 생태계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돌고 돌아 역시 기술로 모든 게 귀결된다. 기술이 강력하면 세상을 얻을 수 있고, 강력한 플랫폼 생태계까지 구동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국내 철강산업의 미래 역시 기술에 달려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