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탄력근무제로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구 모(36세, 남) 씨는 남들보다 아침식사가 늦는 편이다. 점심시간은 식사 대신 업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오후 근무를 하다 2~3시 무렵 늦은 점심을 먹는다. 이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음식점이 한산한 때라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점심시간에 식당 앞에 줄을 서지 않기 위해 서두를 필요도 없다.

최근 탄력근무제 등 새로운 생활패턴, 바쁜 일상으로 아침·점심·저녁 세 끼니를 제때에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사라지고 있다. 체중감량을 위한 1일 2식 추세나 아침을 늦게 먹는 ‘브런치족(Brunch)’, 점심과 저녁시간 사이에 식사를 하는 ‘딘치족(Dinch)’, ‘러너족(Lunner)’의 증가도 삼시세끼라는 우리나라 전통의 식생활 패턴을 뒤흔들고 있다. 하루 세 번 ‘끼니’를 제때 챙기는 것은 바쁜 일상에 쫓기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서서히 낯선 옛일로 변하고 있다.  

▲ 직장인과 대학생의 하루 평균 식사 횟수. 출처= 잡코리아와 알바몬

1일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해 직장인과 대학생 22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두 끼를 먹는다는 응답자가 전체 58.8%로 가장 많았다. 세 끼라고 밝힌 응답자는 30.1%에 불과했다. 한 끼라고 답한 응답자도 9.1%나 됐다.

왜 이처럼 끼니를 거를까? 농촌경제연구원의 ‘2016 식품소비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과 청소년의 각각 52%, 71.7%가 식사를 거르는 가장 큰 이유로 ‘부족한 시간’을 꼽았다.

▲ 성인과 청소년이 식사를 거르는 이유. 출처= 농촌경제연구원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지난해 2월 발표한 카드 사용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식 업종 결제건 증가율은 9시에서 11시가 234~249%로 전체에서 가장 높았다. 15시에서 17시 증가율도 156~161%나 된다. 12시 이후 시간대에서 가장 많은 증가율이다. 아침 겸 점심을 한 끼로 해결하거나 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삼시세끼’ 같은 전통적인 식사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커피 전문점이나 외식 프랜차이즈 등 외식업계에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과거 오후 2시에서 6시 사이는 매장에 손님이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외식업계는 이 시간대에 식사 할인 시간대를 대폭 늘리거나, 새로운 식사 황금시간대를 선보이는 등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가벼운 식사를 원하는 딘치족에게는 커피 전문점이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보편화됐다.

커피 전문점 커피빈코리아에서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시간대별 샌드위치 판매를 분석한 결과, 전년과 비교해 샌드위치 판매량이 약 3.5배 늘었다. 특히 딘치족들이 식사를 즐기는 14시부터 17시 사이 매출이 2015년 한 해보다 290%나 늘었다. 오전 7시부터 10시의 아침시간대 매출증가율(270%), 11시부터 14시의 점심시간대 증가율(243%)보다 높은 수준이다.

▲ 커피빈코리아의 2016년 시간대별 샌드위치 판매증가율. 출처= 커피빈코리아

회사들이 밀집해 있어 직장인 이용자가 많은 커피빈 서울 논현점, 삼성점, 광화문점은 샌드위치 판매율이 각각 283%, 195%, 160% 증가했다. 이는 카페에서 간편하게 식사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점심문화의 변화를 보여준다.

커피빈은 판매율 상승을 견인한 샌드위치 메뉴를 다양화하고 있다. 2015년 7종에서 2016년 20종으로 약 3배 확대했다.

CJ푸드빌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디저트카페 투썸플레이스도 마찬가지다. 현재 전체 매출은 음료를 제외한 샌드위치, 디저트와 같은 푸드 카테고리에서 40% 발생하고 있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지난해 12월 서울시 종로구에 푸드 카테고리를 강화한 ‘더종로점’을 열며 2020년까지 푸드 메뉴를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투썸플레이스 관계자는 “카페에서 푸드 카테고리는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본다”면서 “2002년 투썸플레이스 출시부터 프리미엄 디저트카페를 콘셉트로 잡았는데, 이제는 업계 트렌드가 되면서 다른 브랜드도 푸드 메뉴를 확대·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맥도날드는 지난달 26일 소비자들이 하루 종일 시간 제한 없이 부담 없는 할인된 가격에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맥올데이 세트’를 출시했다.

▲ 맥도날드는 점심시간 한정 할인 대신 시간 제약 없이 하루종일 낮은 가격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맥올데이세트'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 맥도날드

맥올데이 세트는 점심시간 동안만 할인을 제공하던 맥런치를 대체한 할인 혜택 강화 플랫폼이다. 맥올데이세트는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인 ‘빅맥’을 비롯해 ‘더블 불고기 버거’, ‘슈슈버거’ 등 3종으로 구성됐다. 각 버거의 본래 세트 메뉴 가격은 5500원이나 맥올데이 세트를 이용하면 시간의 구애 없이 하루 종일 4900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서 식사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요구를 공략한 맥도날드의 전략은 꽤나 효과가 있었다. ‘때는 놓쳐도 끼니는 놓치지 말자’는 슬로건을 출시한 맥올데이 세트는 1주일 만에 100만세트 판매를 돌파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하루 삼시 세끼를 시간에 맞춰 꼬박 챙겨 먹는 식습관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변하고 있다”면서 “정해진 식사 시간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외식업계에서는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할인 메뉴를 선보이거나, 할인 시간대를 대폭 강화하는 등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고 혜택 강화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들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