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장기호황)이 예상보다 길게 유지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미국에서 D램 가격 답합 혐의로 피소를 당한 사실이 29일(현지시간) 알려졌다.

미국의 대형 로펌 하겐스버먼이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 법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하겐스버먼은 글로벌 D램 시장의 96%를 차지한 세 회사가 독과점 지위를 이용해 생산량을 제한, 가격 폭등을 유도하고 불법적인 이윤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하겐스버먼은 2016년과 2017년 D램이 들어간 기기를 구입한 사람은 모두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세를 키우고 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서 가격 담합 의혹에 직면했다. 출처=위키디피아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은 삼성전자가 46.3%의 점유율로 1위, SK하이닉스가 28.6%의 점유율로 2위, 미국 마이크론이 20.7%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 회사의 점유율이 96%에 이르는 상태에서 반도체 수퍼사이클의 기저에 '가격 담합'이 있다는 것이 하겐스버먼의 주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봐도 올해 1분기 반도체 출하량은 다소 줄었으나 가격 인상 효과로 높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제조업에서는 보기 어려운 50% 이상을 넘기는 이유도 결국 가격 담합이라는 지적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이어지며 가격 담합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나오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현지 삼성전자 관계자를 불러 반도체 독과점 이슈로 면담했기 때문이다.

중국 관영언론인 신화통신은 11월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IT 매체 전자공정세계도 비슷한 논리를 들어 가격담합 의혹을 제기했다. 글로벌 D램 가격이 치솟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독과점에 따른 가격담합이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가격 담합 의혹이 불거지자, 업계에서는 2004년의 악몽을 우려하고 있다. 2004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인피니온 등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에서 D램 가격 담합 혐의로 과징금을 내는 한편 총 16명의 임직원이 구속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은 미국 법무부가 직접 증거를 잡고 수사를 했으나 이번에는 민간 로펌이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급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이어지며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일등공신이라는 점은 업계의 상식이 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꼼수가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2004년과 달리 지금은 인공지능 등의 발전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의 개연성이 충분한 상태"라면서 "현명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