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 업계를 주도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기술력으로 보면 미국이 다소 앞서가는 중이지만 중국이 맹추격을 펼치며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유럽의 인공지능 경쟁력은 뒤쳐졌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초연결 시대의 핵심 플랫폼으로 인공지능이 각광받는 현재, 유럽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글로벌 인공지능 양강구도

영국의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유럽위원회(EC)가 200억유로(24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인공지능 연구 개발 확대에 나설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중국이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인공지능 양강구도를 탈피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시민권을 둘러싼 논의가 벌어질 정도로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인공지능 원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대규모 전략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을 장악한 나라는 미국이다.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퍼스트' 전략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2013년부터 브레인 이니셔티브 정책을 통해 인공지능 전략을 국가 전략으로 확립했으며, 10년간 30억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다. 정부와 학계는 인공지능 원천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이를 활용한 상용화 전략은 구글과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짠다.

냉정히 말해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뇌 연구 프로젝트다. 유럽연합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와 유사하며 100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뇌지도를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실상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뇌 연구를 특성으로 삼는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인공지능은 물론 바이오 산업과의 접점도 있기 때문에 헬스케어 기술 발전 등 다양한 발전 전략이 장점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인텔의 로히리는 자가 학습 인공지능 반도체를 표방하며 14나노 공정으로 설계됐다. 무려 13만개의 뉴런과 1억3000만개의 시냅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을 실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 반도체로 평가된다.

▲ 인텔의 인공지능 반도체는 바닷가재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출처=인텔

미국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곳이 중국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중국 인공지능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인공지능 산업은 2015년부터 매해 30%를 넘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 특허량은 2010년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 세계 2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인공지능 산업 육성 로드맵을 짜기 시작했으며, 2017년 7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인공지능 대국굴기의 꿈을 보여줬다.

2050년까지 총 1500억달러를 투자해 모든 인공지능 분야를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중국 기업인 바이두와 텐센트, 알리바바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해 수 천개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연결한다. 현재 중국은 글로벌 인공지능 스타트업 톱3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중국의 얼굴 인식 기술 개발 스타트업인 센스타임이 최근 6억달러의 투자를 받아 총 4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보도했으며, 중국은 센스타임과 함께 2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가진 이투, 10억달러의 가치를 가진 메그비도 보유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개발 속도도 빠르다. 국제 출판사 엘스비어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인공지능 논문 인용 횟수를 조사한 결과 중국과학원이 총 4999회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위 마이크로소프트 6528회와는 차이가 나지만 8위 구글이 기록한 4113회를 앞섰다.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중국 화웨이는 지난해 9월 모바일 인공지능 반도체인 기린 970을 공개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10에 처음 장착됐으며 옥타코어(8-Core) 중앙처리장치(CPU)와 12개의 차세대 GPU 코어로 구동되며, 10 나노 공정 신형 프로세스를 활용한 제품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도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다만 아직 미국을 단기간에 뛰어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인공지능 업계 관계자는 "아직 많은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논문은 미국에서 나온다"면서 "글로벌 인공지능의 표준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200억유로 투자..."美中 잡는다"

미국과 중국이 인공지능 시장 패권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거듭하는 가운데, 드디어 유럽이 움직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은 인공지능 역량을 모으기 위해 유럽인공지능연구소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EU 호라이즌 2020을 통해 2020년까지 인공지능에 15억유로를 투자하는 방침을 정한 가운데, 전 유럽의 인공지능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핵심이다. 그 연장선에 200억유로의 투자가 단행되는 셈이다.

안드루스 안시프 유럽집행위 부위원장은 "증기기관과 전기가 그랬듯이 지금은 인공지능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며 "유럽이 힘을 합쳐서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 확대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윤리와 관련된 논의 가능성도 열어놨다. 가디언에 따르면 유럽집행위를 현재 중심으로 인공지능 실용화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윤리지침이 제작되고 있다. 인공지능에 시민권을 부여하자는 움직임과 부합된다. 유럽은 2012년부터 '로보로(Robolaw)'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지능 로봇 인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2017년 '로봇시민권 권고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유럽집행위가 200억유로 투자를 통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 주도의 인공지능 양강구도를 깨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으기 위함이다. 지난 3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2년까지 총 15억유로를 투입하는 인공지능 전략을 공개한 이유다. 우수한 유럽의 인공지능 인재들이 미국과 중국 기업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전제도 깔렸다.

삼성전자가 프랑스에 새로운 인공지능 연구개발 센터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도 유럽의 강력한 인공지능 로드맵을 잘 설명한다. 지난달 29일 손영권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는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파리에 조만간 인공지능 연구개발 센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리에 15명 수준의 인공지능 연구개발팀을 운용하고 있다. 이를 연말까지 50명까지 늘리고 추후 100명까지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유럽이 새로운 ICT 패러다임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시대마저 미국과 중국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도 보인다. 구글에게 유럽 검색 점유율 80%를 빼앗기는 파국을 인공지능 시대에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평가다.

다만 하나된 유럽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단일대오로 걸을 가능성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가디언은 영국의 우주산업이 브렉시트 여파로 흔들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유럽의 야심찬 인공지능 로드맵도 어려운 길을 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유럽연합은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산업에 나서고 있으나 지난달 프로젝트에서 영국을 배제했다"면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한 상태에서 유럽 인공지능 전략의 현실성에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