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출입 상담 환자 중에는 중국이나 북한에서 태어나 현재는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국어뿐 아니라 중국어에 능통한 환자들 중에는 중국인들의 한국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 중국에서 의사를 하다 한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으로 시집온 사람도 있었고, 대학을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이들의 한국어 억양과 발음은 표준어와 조금 달라서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다른 지역에서 살았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그런데 환자 본인들은 자신의 말투가 다른 것 때문에 혹시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걱정을 하고 때론 밝히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날도 조금 다른 억양을 가지고 있는 환자가 내원했다. 필자가 조심스럽게 고향을 물어보자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돌출입에 대한 상담과 진료가 끝나자마자 가방에서 뒤적뒤적 서류를 하나 꺼냈다.

“원장님,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좀 두렵지만 부탁 하나만 드리려고 합니다.”

서류는 등기권리증 즉, 땅문서였다. 그는 한국에 정착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몇 년 전 경기도 모처의 땅을 샀다고 했다. 땅문서와 함께 내민 것은 미리 준비해온 각서였다. 각서에는 수술 후 할부로 수술비를 갚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땅을 넘겨주겠다는 내용이 직접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환자는 ‘선생님이 믿지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주민등록등본과 학생증도 보여주었다. 졸업을 곧 앞두고 있는 ‘명문대’ 학생 신분이었다.

아주 옛날에야 땅문서를 맡기며 노름판에서 노름도 하고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2018년 아닌가. 금융기관도 아닌 병원에서 그 등기권리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법적인 실효성도 없거니와 그 땅을 ‘담보’로 할 수 있는 법적권한도 없다. 또한 땅은 법적 주인인 환자가 언제든 팔 수도 있다.

순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수술비용을 떼이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나 법적인 공증이 아니고 바로 돌출입 수술이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필자는 수술비보다도 그에게 대한민국이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비는 나중에 받기로 했다. 수술 날을 잡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자 환자는 “이렇게 수술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환자는 ‘내일 2시에 수업이 있다’며 퇴원시간을 물었다. 필자는 하루 이틀이라도 쉬는 게 좋고, 결석 처리 안 되도록 소견서도 써 주겠다고 했더니 환자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수업을 한 번 빠지면, 나중에 시험 볼 때 모르는 게 생겨서 안 됩니다. 수업은 기어가는 한이 있어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장학금이 꼭 필요해서요.”

돌아보면 그는 참 기억에 남는 환자다. 그 환자를 보면서 살아가는 것과 필자의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죽음과 맞닥뜨린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남보다 몇 배는 모질고 강하게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돌출입이 주는 강하고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 더 과장되어 보이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이제, 대학 졸업반이 된 그녀에게 필자가 해준 돌출입 수술이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큰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도 느끼는 바가 많았으니 값진 선물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뜨겁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다. 일찍이 시인 안도현은 이렇게 썼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