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조선시대에는 신문고(申聞鼓)가 있었습니다. 태종 원년에 설치된 신문고는 백성 중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자기의 원통함을 알리기 위해 종종 사용되곤 했습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조선 시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한양까지 올라와 신문고를 울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요? 게다가 신문고를 울리려면 관청에 보고도 해야 하고 그 내용도 지극히 한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신문고는 왕이 직접 백성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우리는 ICT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초연결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는 기술 플랫폼 위에서 시공간의 제약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알릴 창구인 언론사는 수 천개를 넘어가고 심지어 SNS도 있습니다.

최근 갑질논란을 일으킨 대한항공 사태를 맞아 직원들이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제보하는 시대며, 최근에는 관세청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열어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파편화된 목소리가 거대한 광장에서 휘몰아치며, 누군가는 조작을 하고 누군가는 의미있는 민주주의의 초석을 발견하는 시대. 소통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들었습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청와대의 직접 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이를 위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는 구조입니다.

조선 시대 신문고의 비현실성이 ICT 기술을 만나 시공간을 뛰어넘었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어려움과 분노를 순식간에 청와대로 알릴 수 있는 창구를 가지게 됐습니다. 매우 의미있고, 훌륭한 소통입니다.

문제는 소통의 부작용에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익명을 바탕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허위 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관리자가 부적절한 청원을 숨김이나 삭제처리를 하고 있지만 간혹 나오는 '허위사실'들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지만 비효율성으로 좁혀집니다. 조선 시대 신문고가 보여줬던 비효율성과는 다른 성격의 비효율입니다.

현재 청와대는 20만개 이상의 추천을 받은 청원 21개를 직접 답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원이 20만개 이상의 추천을 받아 답변 대기 중에 올라와 있으며 25일 12시 기준 전체 청원 숫자는 17만1112개에 이릅니다. 그런데 청원 내용을 살피면 '이런 청원이 민의의 탈을 쓰고 청와대에 전달되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월19일 청원이 시작되어 무려 61만4127건의 추천이 올라온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입니다. 3월6일 청와대 답변이 있었습니다. 김흥수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은 "진상조사를 시작하겠다"면서 "빙상연맹 자체의 자정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청원 중 일부. 출처=갈무리

평창 올림픽 당시 일부 선수가 보여준 그릇된 자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그 기저에는 빙상연맹의 오래된 적폐가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과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와야 할까?'라는 의문은 떨치기 어렵습니다. 의미있는 행동이지만, 거칠어진 감정의 단면이 그대로 반영된 국민청원에 냉정한 상황판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만개를 넘기지 못한 청원 중에 다소 황당한 내용도 많습니다. 황당했기 때문에 20만 추천을 받지 못했겠지만, 이 역시 사안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려스러운 것들도 많습니다. 비록 추천이 92명에 그쳤지만, 프로야구 심판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청한 대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만3227명의 추천을 기록한 '이재명 전시장 지지자의 악의적 sns활동의 당과 청와대의 진상규명을 요구합니다'도 우려스러운 청원입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한 문제제기일 수 있으나, 다소 정파적 원리에 따라 올라온 청원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당연히 이해되는 구석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투명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겠나'는 절망스런 감정도 읽힙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광장'에도 나름의 질서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억울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을 확실하게 재정비하는 한편, 광장의 그림자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무분별한 증오의 냄새도 걷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신문고는 제도의 미비로 활용하기 어려운 비효율을 대표한다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제도가 너무 확실하고 강력해서 비효율로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