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인 이민자들이 한국과 비교해서 가장 큰 불편함을 호소하는 부분은 바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콧물이 나거나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동네의 병원에 바로 가서 진료를 받고 몇 천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의사를 한 번 보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데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의사를 만나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방문을 위한 예약을 해야 한다. 지역과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환자가 많이 밀린 경우라면 며칠에서부터 한 달 이후로 예약이 된다.

기침 감기로 의사를 만나려고 생각했다면 의사를 만날 때쯤 이미 감기가 다 나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일반 병의원의 운영시간은 직장인들의 근무시간과 일치하다 보니 아예 하루 휴가를 내지 않는 한 의사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렵게 예약을 잡았는데 만일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하루 전에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시간에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병원에 따라서 예약 불이행에 따른 벌금까지 부과받는다.

만일 아이가 많이 아프거나 통증이 심해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대형 병원의 응급실(ER)을 찾을 수 있지만,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상황에서 방문하는 것이 권장된다.

뼈가 부러졌다거나 출혈이 심하다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상황에서는 응급실을 방문할 수 있지만, 기침감기가 심한 정도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은 곤란하다.

응급실 평균 비용이 1233달러나 되는 것도 응급실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 상황이 급하거나 시간에 쫒기는 미국인들이 택하는 것은 주말에도 운영을 하고 예약이 필요 없는 어전트 케어(Urgent Care) 서비스다.

어전트 케어는 의사가 상주하는 의료시설로, 예약이 필요 없고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운영한다.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응급실에 갈 만큼의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경우를 주로 치료한다.

급성 기관지염으로 어전트 케어를 방문할 경우 약 127달러가 들어 응급실의 595달러보다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어전트 케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해당 시장도 급속도로 확대되어 왔다. 1970년대 등장한 어전트 케어의 현재 시장 규모는 약 145억달러이며 미국 내에 약 1만개의 어전트 케어 시설이 있다.

특히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약 10년간 어전트 케어에서 청구된 민간 의료보험 지급 요청은 1725%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응급실(ER)에서 청구된 의료보험건수는 229% 증가로 큰 차이가 있다.

즉시 의사를 만날 수 있고 비용이 저렴한 어전트 케어가 인기를 끌면서, 이보다 더 저렴하고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컨비니언트 케어 클리닉(Convenient Care Clinic)도 확대되고 있다.

컨비니언트 케어는 어전트 케어보다 덜 심각한 질환이나 예방적 치료를 위해 방문하는 곳으로 독감 예방 주사를 맞거나 인후염 등을 치료받을 수 있다.

의사가 상주하는 어전트 케어와는 달리 컨비니언트 케어에는 임상간호사(Nurse Practitioner, 환자 진료와 처방이 가능) 혹은 진료보조(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응급구조사, 물리치료사 등을 지칭) 등의 의료인력이 상주한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저렴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의사가 아닌 대체 의료 인력을 고용함으로써 진료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특히 컨비니언트 케어는 슈퍼마켓이나 약국이 있는 대형 유통점포 내에 위치하면서 쇼핑을 온 고객들이 손쉽게 병원도 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약국 체인인 CVS와 Walgreens이 가장 큰 컨비니언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미국 건강보험회사 휴매나를 인수하려는 시도나 CVS가 보험회사 애트나를 인수하는 것도 모두 컨비니언트 케어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의료시장에 뛰어들면서, 그동안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오던 1차 진료 의사들은 난관에 부딪혔다. 1인이 운영하는 작은 클리닉을 유지해왔지만 이제는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병원 문을 닫거나 다른 클리닉과 합병을 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