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지난 19일 수원지방법원 행정 제3부는 삼성전자가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장과 평택지청장(이하 고용노동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종편 방송사 PD의 정보공개청구를 받아들여 삼성전자 기흥·화성·평택·온양·구미 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이하 이 사건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에 받아들여진 집행정지는 삼성전자가 고용노동부의 정보 공개 결정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함께 신청한 것이었다.

법원은 만약 이 사건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것이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정보공개 처분을 막아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는 반면, 집행정지로 인해 공공복리를 중대하게 저해될 우려는 없다고 판단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행정소송법 제23조 참조).

이 사건 보고서는 작업장 내 유해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노출 정도를 측정하고 평가해 그 결과를 기록한 문서로 사업주는 6개월마다 이를 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각 유해물질이 작업장 내 근로자들의 업무상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고려해 산업재해보상을 전담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상위기관인 고용노동부가 예방적 차원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보고 받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건 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국가핵심기술과 관련한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지난 17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반도체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 사건 소송과 별도로 진행 중인 행정심판에서도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사건 보고서의 공개를 보류한 바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행정소송과 행정심판 각 절차에서 이 사건 보고서가 공개되는 최악의 참사는 면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은 대체로 고용노동부가 이 사건 보고서 전부 공개를 강행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이 사건 보고서의 공개를 결정한 것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따른 것이다.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적극적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제3조 참조).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는 무한정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정보라 하더라도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제9조 제1항 제7호 참조).

물론 ‘사업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危害)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라면 예외적으로 공개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제9조 제1항 제7호 제 가목 참조), 이 사건 보고서가 제3자인 삼성전자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처음부터 제기된 이상, 해당 분야의 전문성도 갖고 있지 못한 고용노동부가 단편적으로 공개 여부를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비공개대상의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가 이를 임의로 공개했다면, 이미 경쟁업체 등에 모두 노출되어 버린 삼성전자의 경영상·영업상 비밀로 인해 삼성전자는 경제적으로 회복할 수도 없을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행정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조차도 제한적으로 소송자료에 접근·열람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비공개대상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심사숙고 끝에 이 사건 보고서가 정보공개법 제9조 상의 비공개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더라도 고용노동부는 정보 공개의 범위를 대폭 축소해야만 했다. 정보공개법에는 “정보공개청구권자가 공개 청구한 정보가 비공개대상인 부분(제9조)과 공개 가능한 부분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로서 공개 청구의 취지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두 부분을 분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비공개대상이 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공개하여야 한다.” 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제14조).

더욱이 고용노동부는 제3자인 삼성전자로부터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지 아니할 것을 요청받았을 것인바, 공개 결정을 하기로 하였다면, 지체 없이 이를 문서로 통지하였어야 한다(제21조). 제3자의 정보공개와 관련해서는 정보공개법에서도 이렇듯 엄격한 절차를 통해서만 정보공개 결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만약 이를 어겼을 시 해당 공개 처분은 절차적으로 위법한 처분으로서 행정소송 및 심판 대상이 된다.

보다 노골적으로는, 삼성전자 작업장 내 산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인 고용노동부가 정작 본질적인 문제해결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이 사건 보고서 공개문제만 부각시키는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산재 판정을 주관하는 근로복지공단은 고용노동부의 산하기관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조직 구성으로부터 업무 범위, 지침까지 고용노동부는 산재 판정 업무에 매우 깊숙하게 그리고, 매우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런 만큼 고용노동부가 조금만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삼성전자 작업장 내 산재 문제는 굳이 먼 길을 돌아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도 조기에 해결될 수 있다.

가령 삼성전자에서 근무를 하다 산재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을 때, 근로복지공단 내에서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고용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이 사건 보고서와 같은 정보를 제한적으로 전달받아 의학적 인과관계 등을 따져 본다면 당해 근로자가 산재승인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고용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삼성전자 작업장 내 근로자 산재신청에 대해서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거부처분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전자의 민감한 경영상·영업상 비밀 정보까지 공개하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사회적 논란을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바람대로 이 사건 보고서가 전부 공개되고, 해당 정보를 토대로 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소송을 하더라도 통계적으로 승소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소송을 통해 산재승인을 받는 것은 그 만큼 근로자로서도 가시밭길인 것이다.

삼성전자, 근로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쉬운 길이 있음에도 고용노동부는 왜 일을 어렵게 만들고 서로 갈등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