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y(Neighbors), 120×50㎝ Mixed Media on Canvas, 2002

성서에는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다. 증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에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는 복음 전파에 삶을 드릴 때에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손문자 작가의 작품은 이처럼 행복이든 불행이든 색채와 형태로 신앙 속에 사는 사람들의 구원의 역사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The Way(The seventh day), 130×130㎝, 2002

일찍이 성서를 테마로 많은 작품을 남겼던 샤갈은 1958년 시카고 가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에게 그림은 창문이다. 나는 그것을 통해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 손문자의 그림은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창문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예술은 하이데거가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지적한 것처럼.

예술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진리라는 이름하에 형상을 가진 가장 높은 형식으로 인식되지 않고, 혹자는 예술이 계속 발전하고 완벽한 형태를 취하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이 애타게 찾는 것이 아닐 것이며, 이러한 상관관계 속에서 예술은 우리들에게 그 역할이 주는 의미에 한해서 과거의 것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다시금 우리는 손문자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예술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측면’은 무엇일까 과연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술의 역할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역할을 충족시켜주는 예술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것은 우리들에게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 The Way(Obedience of Abraham), 194×130㎝, 2002

이러한 질문 앞에 아더 단토가 오늘날 이야기 방식의 예술은 대부분의 현대 예술가들에 의해서 예술의 진정한 형태가 아니라는 비찬, 헤겔이 훌륭한 예술작품은 그 작품성 자체보다도 그 작품이 전해줄 수 있는 진리의 형상을 사람들이 읽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은 여류화가 손문자의 그림을 보면서 더욱 그의 그림에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진리는 예술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손문자(ARTIST SOHN MOON JA,孫文子)의 이 진실한 예술작품 앞에서 하나님의 진실과 진리를 진정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김종근(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