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4분기에 직장을 옮긴 일본 직장인의 30.4%가 전직장에 비해 급여가 1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일본 대기업의 평생고용 관행은 20년 넘게 경제가 침체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이제 이 시스템이 고용 시장의 경색이라는 최대의 시련에 직면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최근에 많은 직장인들이 더 높은 급여를 주거나 근무 시간이 더 적은 직장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자회사에서 17년을 보낸 올해 43세의 특허 전문가 요코 브라운은 자신의 회사 전망에 대한 걱정이 생기자 회사를 옮겼다. 그리고 새 회사에서 주말 근무를 요청하자 그녀는 지난 해 다시 이 재팬 타바코(Japan Tobacco Inc.)로 다시 회사를 옮겼다.

"나도 고용된 첫 회사에서 직장 경력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일본식 사고를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7년 일본에서 직장을 옮긴 사람의 수는 311만 명으로 7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 2월 일본의 고용 시장은 지원자 100명당 일자리가 158개로 44년 만에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2.5 %로 떨어졌다.

취업 전문 회사인 리크루트 커리어(Recruit Career Co.)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31일로 끝난 2017 회계연도에 취업자의 29.7%가 이전 직장보다 급여가 10% 이상 높은 곳을 향해 떠났다. 이것은 기업들 간에 구인 경쟁이 심해졌다는 신호다.

고용 시장의 유동화는 비록 더 많은 급여를 주어야 한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사람을 고용하려는 외국 기업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이와 같은 추세는 일본 기업들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보다 오늘날처럼 일본 경제가 비교적 건강할 때 나타나기 쉬운 현상이다.

패션 사이트 조조타운(Zozotown)을 운영하는 한 일본 회사는 이번 달, 연봉 1백만 달러(10억 7천만원)를 받을 "천재" 7명을 고용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이 회사의 기술 사업부 유키 카나야마 이사는 ‘자칭 천재’ 12명으로부터 지원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IT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한 사람이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애플 같은 외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에게는 그런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 회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보수를 제공하니까요.”

▲ 일본의 고용 시장이 더 유연해 지긴 했지만, 2016년에 일본의 평균 직장인들은 한 회사에서 12년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8.6년이었다.       출처= pinterest.com

대부분의 일본 대기업들은 평생고용 체제 하에서 매년 봄 새로운 신입 사원을 고용하면서, 극심한 경기 침체만 아니라면 은퇴할 때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보장을 제시한다. 소니, 혼다, 파나소닉 등 대부분의 주요 기업의 CEO들도 이 회사의 평생 직원들이다.

이런 관행은 근로자들이 장기 근무를 유도하고 간부층에 대한 고용 안정을 제공하지만, 인사 정체와 생산성 저하를 유발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장기 침체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진 일부 회사들에서 이 시스템이 다소 후퇴하기는 했지만 직장에 대한 직원들의 변함 없는 충성이 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었다.

일본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통화 완화를 포함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으로 일본 경제가 8분기 연속 성장을 기록했지만 인구 감소에 따라 노동자의 수는 감소했다.

재팬 타바코는,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Philip Morris International Inc.)과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British American Tobacco PLC)같은 세계적 경쟁 업체들이 태우지 않고 가열해 니코틴 증기를 뿜게 하는 ‘가열타입 담배’(heat-not-burn cigarettes)’ 판매에 앞장서면서 2017년에 경력직 채용을 거의 두 배로 늘렸다.

재팬 타바코는, ‘플룸 테크’(Ploom Tech)라는 자체 개발품으로 이들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요코 브라운도 ‘플룸 테크’ 및 기타 기술과 관련된 회사의 지적 재산권을 관리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재팬 타바코의 시라스 마사히토 대변인은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 환경에서, 우리는 출근 첫날부터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해 도요타 자동차는, 후지츠(Fujitsu Ltd.), NEC, 도시바(Toshiba Corp.) 같은 회사들이 입주해 있는 도쿄 남부 대규모 연구 단지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라인(南武線, 난부선)에 ‘직장을 바꿔 볼 것’을 권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도요타의 구인 광고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우리는 실리콘 밸리의 기술자보다 난부선 지역의 기술자를 원합니다.”

싱가포르의 일본계 리쿠르팅 회사인 제이에이시 리크루트먼트(JAC Recruitmen)의 수미요 에비 수석 컨설턴트는, 기술직 인재들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회사들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줄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을 현장에서 직접 봐왔기 때문에 이런 구인 광고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위기를 목격하면서 평생고용의 신화는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중간 경력자들의 일자리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회계연도에 오가키 교리츠 은행(Ogaki Kyoritsu Bank Ltd., OKB)은 대학 졸업자 177명을 고용하면서 경력자는 2명만 채용했다. 이 은행의 대변인은 “우리는 새로운 졸업생을 고용해서 다양한 교육을 통해 OKB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그들에게 심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회사를 옮기는 직장인의 수는 여전히 일본 직장인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영국 직장인들의 한 회사 근무 기간이 평균 8.6년인데 반해, 2016년 일본의 직장인들은 평균 12년 동안 한 회사에 근무했다. 미국 노동 통계국은 직장인들의 평균 근속 기간을 내지는 않지만, 2016년 직장인들의 한 직장 근속 년수 중간값은 4.2년이었다.

히토츠바시대학교의 경제학과 캄바야시 료 교수는 "20년 동안 계속 근무하면 급여가 2배 이상으로 많아 지기 때문에 일본 직장인들은 직장을 옮기는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코 브라운은 이전 고용주가 주말에도 종종 밤 9시까지 야근할 것을 요구한 것이 직장을 옮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재팬 타바코로 옮긴 후에는 십대인 딸과 함께 빵을 구우며 즐길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회사가 평생 나 자신을 돌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