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음원 시장에서는 '수상쩍은 차트 역주행'이 논란입니다. 가수 닐로의 '지나오다'라는 곡이 유명 아티스트를 누르고 멜론 등 각종 차트 순위를 석권하자 일각에서 반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발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스트리밍 플랫폼의 약점을 공략한 일종의 시스템 조작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닐로의 소속사인 리메즈엔터테인먼트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법적 대응도 예고했으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네이버를 둘러싼 논란

최근 국내를 대표하는 포털 업체 네이버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차라리 대중음악의 영역이었다면 제한적인 논란만 벌어졌겠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와 뉴스, 여론의 조작 혐의에 대한 논란이 벌어져 일이 커지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인 필명 드루킹이 매크로 기술로 특정 정치기사의 댓글 추천수 등을 조작해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정치의 영역으로 잠시 밀어두고, 네이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루킹은 어떻게 댓글 조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매크로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크로 기술의 본질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여러 개의 명령어를 묶어서 하나의 키 입력 동작으로 만든 개념입니다. 일종의 물량공세라는 점에서 디도스 공격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다음 질문. 네이버는 매크로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댓글을 작성하고 추천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닙니다. 문제는 매크로라는 편법을 동원하면서 발생했어요. 그렇다면 네이버는 왜 매크로를 막지 못했을까? 네이버 관계자는 "해킹과 비슷하다"면서 "매크로 방지책을 세워도 새로운 매크로 기술이 등장하면 다시 방어 전략을 짜야한다.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네이버 관계자는 대화 말미에 "매크로는 불법이라는 점을 언론인들이 알려달라. 사람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활용하는 것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학 수강신청이나 티켓 예매할 때 아무 생각없이 매크로 프로그램 돌리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러다가 감옥갈 수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네이버의 처지가 이해됩니다. 지난해 초유의 스포츠 콘텐츠 조작 사건이 불거진 후 이번에는 댓글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어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랐고, 스스로 수사 의뢰를 한 행위까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스포츠 콘텐츠 조작 사건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댓글 조작은 하지 않았다는 억울함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논란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질문. 매크로는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 그런데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고 아예 막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방치하지 않았나? 네이버는 모두 아니라고 말합니다.

당분간은 믿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한성숙 대표 체제에서 인공지능 경쟁력에 기술기반 플랫폼을 동원, 스몰 비즈니스를 키우겠다는 로드맵을 당당하게 밝히면서도 '매크로는 막기 어려워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은 묘한 구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삽을 든 적군의 공격에 궤멸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럴 수 있지요. 알고보니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정예병이 아닌, 당나라 군대만 모여있는 곳이었을 수 있고 방어 시스템이 미사일은 감지해도 삽을 든 적군은 놓칠 수 있을 수 있으니까요.

독과점을 넘어 진실로
드루킹 사태의 본질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이라는 청와대의 언급이 나왔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더욱 내밀한 본질은 플랫폼 속성에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드루킹은 왜 포털 다음에서 핵심적인 여론조작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약간 잔인한 말이지만 다음의 존재감이 미비하고 네이버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국회에서 포털 뉴스와 관련된 토론회가 열렸을 당시 유봉석 네이버 전무와 이병선 카카오 부사장이 나란히 등장했을 때, 다른 패널의 공격이 유 전무에게 집중되는 장면을 본 적 있습니다. 이 분야의 대장은 네이버에요. 카카오는 약간 고마워해야 합니다.

네이버는 국내 포털을 석권한 사업자입니다. 구글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네이버는 국내 시장을 지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토종기업의 존재감에는 박수를 쳐야 합니다. 그런데 독과점이 심해지며 많은 부작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드루킹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국내 포털 시장이 춘추전국시대였다면? 동일한 여론조작 사건이 발생해도 리스크는 분산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네이버만 '공략하면'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여기서 미묘한 대목을 살펴야 하는데, 네이버가 시장 독과점 사업자라고 마냥 공격당해야 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건전한 견제는 있어야하지만 오히려 칭찬해야 합니다. 플랫폼 사업자의 본질은 시장 장악에 있고, 그 자체로 절대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장 독과점 사업자라는 '왕관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경우에 발생합니다. 지난해 초유의 조작 사건을 일으켜놓고 이후 벌어진 비슷한 사건에는 '전에는 잘못한 것 맞아. 그런데 이건 아니야. 그냥 우리가 부족해서 몰라서 그랬어'라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요? 그 말이 진실이라도 의혹의 눈길은 사그라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되면 '우리는 민간 사업자에 불과해'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됩니다. 논란이 커질경우 네이버가 버티지 못하고 있는 왕관의 무게를 덜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인류애라고는 1%도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어느날 연구 끝에 인류를 몰살시킬 무기를 개발했다면, 모든 사람들은 그 무기를 뺏어야 한다고 말할겁니다.

물론 네이버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른미래당 소속 이언주·권은희·신용현·오세정·채이배 의원 등이 18일 네이버를 항의방문했을 당시, 권 의원은 네이버가 댓글 정책 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네이버의 매크로 방지 기술력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댓글을 없애거나 실명 댓글 정책 등의 초강수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시스템으로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 네이버의 설명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유지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본질은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있습니다.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드루킹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네이버 플랫폼에 집중해 이와 관련된 논란은 명명백백하게 밝히십시요. 이 과정에서 핵심기밀을 유출할 필요도 없고, 매크로 방지 정책과 일각의 의혹에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홍보팀 뒤에만 숨어 찔끔찔끔 풀어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해진 총수가 지분도 줄이고 해외로 나갔다면, 비슷한 중량감을 가진 인사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이영주 제3언론연구소장은 지난달 26일 유승희, 김경진, 추혜선 의원실 등이 주최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언론위원회과 주관한 ‘포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외국은 현안이 생기면 민간 사업자가 국회에 스스럼없이 출석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이 문화가 국내에도 이식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정도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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