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저희는 사실 법적으로 잘못이 없어요. 얼핏 보면 문제 있어 보이지만 위법은 아니에요. 굳이 문제를 집어내도 경미한 수준이에요. 근데 이런 사소한 이슈를 가지고 여론과 언론이 여기저기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여론과 언론을 신경 써야 하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명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지진에 흔들린) 빌딩이 사람을 죽인다(Earthquakes Don’t Kill People, Buildings Do).’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위기 발생 시 여론의 위해도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진(논란) 그 자제가 사람(기업)을 죽일 수는 없지만, 지진(논란)에 의해 흔들린 빌딩(여론)이 무너지면 사람(기업)을 죽게 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슈나 논란이 그 자체만으로 기업에게 큰 데미지를 주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슈나 논란이 여론을 흔들어 그 여론에 의한 후폭풍이 기업에게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이죠. 아무리 큰 지진(논란)이 일어나더라도, 빌딩(여론)이 끄떡 없다면 사람(기업)은 다치거나 죽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 지진(논란)임에도 빌딩(여론)이 심하게 흔들리다 무너져 내리면 사람(기업)을 다치게 되겠지요.

질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특히 법무나 로펌 쪽에서 그런 방향성의 조언을 많이 할 겁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위 명언에 비추어 볼 때 지진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유일한 빌딩을 ‘법’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이 정도의 지진(논란)은 저 큰 빌딩(법)을 흔들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업에게 조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슈나 논란 그리고 위기를 전체론적 시각으로 보면, 그 빌딩을 ‘법’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분명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개인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의 차원에서는 지진 발생 시 우려해야 하는 것이 ‘법’이라는 하나의 빌딩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일단 위기가 발생했을 때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사회적 공분은 계속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언론은 지속적으로 여러 정보들을 뉴스화하면서 여론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수사기관, 규제기관 등은 이런 여론에 떠밀려 어떤 조치라도 실행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기업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의원 개개인을 넘어 정당과 국회 차원에서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청와대와 주무부처들 또한 여론을 거슬러 위기에 빠진 기업을 감쌀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의견을 밝히게 되고, 그에 따라 수많은 기관들이 위기관리 전쟁에 투입되게 됩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법’이라는 빌딩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여론과 관계된 그 수많은 이해관계자 빌딩들이 쉼 없이 흔들린다면 기업은 어떤 대응이 필요하겠습니까? 여러 이해관계자 빌딩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면 그 옆의 ‘법’이라는 빌딩만 그대로 꼿꼿할 수 있을까요? 법조인들은 ‘법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법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여론은 중요하고 위해 가능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실무적으로 여론을 관리하기 위한 기업의 여러 대응은 이를 둘러싼 많은 수사 및 규제기관, 정부부처가 받고 있는 여론의 압력을 감소시켜주기 위한 2차적 목적도 있습니다. 해당 기업이 여론을 잘 관리해 정상참작을 받는 상황이라면 굳이 수사나 규제, 정부기관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한 지진이 났더라도 이해관계자 빌딩들을 하나하나 지탱해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것이 성공하는 위기관리입니다. ‘법’이라는 빌딩 아래에 숨어 이 지진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는 기업이 되지 마십시오. 주변에 ‘여론’이라는 어마어마한 빌딩 숲을 바라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