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카카오재팬이 17일 일본 토호 시네마스 롯폰기 힐스에서 만화 플랫폼 픽코마의 현지 시장 공략 성과를 알리면서 스트리밍 서비스 픽코마 TV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현재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출판왕국’ 일본에는 쟁쟁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포진해 있으며, 신생 서비스 픽코마의 미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보란 듯이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유가 뭘까? 기다리면 무료 등과 같은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비결로 꼽히지만, 픽코마의 성공을 100%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는 ‘사람들이 다시 만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가 픽코마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출처=카카오

거대 문파 픽코마류(流)

모바일 만화 플랫폼을 표방하던 픽코마가 강력한 출판 만화 시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그러나 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 등의 비즈니스 모델은 물론, 콘텐츠 중심의 정교한 브랜드 전략을 바탕으로 출시 2년만에 큰 성공을 거뒀다.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는 “2015년 5월 일본에 와 많은 출파사와 만났는데, 다들 너무 늦었다는 충고를 했다”면서 “2013년부터 다양한 만화앱이 시장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4월 픽코마가 출시된 후 초반에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김 대표는 “초창기 80개 작품을 받아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일일 방문자 수가 300명에 그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어느날에는 일일 방문자가 6명에 그칠 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 김재용 대표가 픽코마의 성장곡선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픽코마의 겨울’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양한 콘텐츠 전략을 동원해 거짓말같은 반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카카오재팬에 따르면 픽코마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8억2400만엔(약 82억4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6% 증가했고 월간 활성 이용자 수도 지난 3월말 기준 29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누적 다운로드는 800만건을 돌파했으며 총 작품수는 2000개에 이르는 등 콘텐츠 생태계 자체가 풍부하다. 카카오 특유의 IT 기술력을 동원해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마케팅 전략도 도입된다. 김 대표는 “여성 독자와 남성 독자에게 노출되는 표지 이미지를 바꾼다”면서 “사람들이 만화를 보도록 만들고, 어떻게 해야 만화를 보도록 만들까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벤트로 픽코마 팬덤의 볼륨을 키운 대목도 주효했다.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기다리면 무료’다. 만화책 한 권을 여러 편으로 나눈 뒤 한 편을 보고 특정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편을 무료로 볼 수 있고,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편을 보려면 요금을 지불하도록 설계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처음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 모델이 공개됐을 당시 일본 출판 업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보였으나, 지금은 앞다투어 ‘픽코마류(流)’에 합류하고 있다.

김 대표는 “픽코마의 첫 목표는 일 방문자 1만명이었으나, 1만명 목표를 달성한 후 10일만에 2만명 돌파를 이뤘다”면서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 모델은 ‘만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재용 대표가 기다리면 무료의 비즈니스 모델이 상표 등록이 됐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기다리면 무료는 만화 매니아를 위한 것이 아닌, 일종의 라이트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김 대표는 “만화와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만화를 다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기다리는 무료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라면서 “라이트 유저들이 만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픽코마의 목표다”고 말했다. 현재 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를 비롯해 지금만 무료, 웹 버전의 기다리면 무료 등 다양한 콘텐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김 대표는 광고가 없는 픽코마 특유의 플랫폼도 ‘가치와 철학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광고를 넣으면 월 1억엔(약 10억원)의 수익이 가능하다”면서도 “픽코마는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플랫폼이며, 이러한 철학을 지키기 위해 당분간 광고 수익은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광고는 게임인데, 만화를 보는 플랫폼에서 게임 광고를 통해 고객을 빼앗기는 것이 옳은 생태계 전략일까라는 고민도 있다”고 말했다.

픽코마의 성공은 콘텐츠에 집중한 플랫폼의 가치를 확실하게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오래된 만화부터 신작까지 다양한 마케팅으로 무장시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또 모든 전략을 ‘사람들의 만화에 대한 사랑’으로 수렴시키며 플랫폼 생태계를 조정한 대목도 주효했다. 새로운 작품은 물론 오래된 작품도 총망라한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는 한, 픽코마는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픽코마의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출판왕국 일본’이라는 별명이 말하듯 일본의 만화시장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픽코마 성장 여백도 넓다는 평가다. 한국 만화시장 규모가 5000억원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10배인 약 5조원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기술의 발전으로 픽코마 운신의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야심도 보였다. 김 대표는 “여기서 말하는 글로벌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라면서 “작품에 대한 가치관과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중국 텐센트와 함께 협력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면서 “조만간 좋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일 작가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연내 한국, 중국, 일본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글로벌 만화 콘테스트’도 연다. 각 국 작가들이 경연을 통해 대표를 뽑아 서로 진검승부를 벌인다. 라이트노벨과 같은 만화 외 시장에도 진출하며, 일본에서 유일하게 만화학과를 보유한 도쿄 세이카 대학과도 협력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도쿄 세이카 대학 니시다 신지로 교수, 만화가 로쿠타 노보루는 무대에 올라 “픽코마의 장대한 계획을 보며 감탄했다”면서 “후학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들이 모험을 해야 한다. 픽코마와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 픽코마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 기다리면 무료 개요도. 출처=갈무리

픽코마 TV, 스트리밍 야망 통할까?

픽코마 TV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김 대표는 픽코마 TV 출시 전략을 공개하기 전 만화를 동영상으로 만든 광고 CF를 공개했다. 김 대표는 “작품을 중심축으로 삼아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 사용자 경험의 확장이 픽코마 TV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만화시장과 스트리밍 동영상 시장은 모두 과도기”라고 단언하면서 “스트리밍 동영상에도 픽코마의 방식이 통할 것이라 봤다”고 말했다.

자세한 서비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소위 ‘맛보기 동영상’을 보여준 후 요금을 과금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유력하다. 김 대표는 “픽코마 TV 첫 작품은 예수와 부처의 현대판 해석인 ‘세인트 영맨’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제작에 들어간 배우와 제작진 인터뷰를 공개하기도 했다.

시장의 볼륨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일본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이 확대일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디지털콘텐츠협회(Digital Content Association of Japan)에서 발행한 ‘디지털 콘텐츠 백서 2017’에 따르면, 일본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커지고 있다. 매년 200억엔(약 2000억원)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일본 전체 영상 시장 규모도 4조4500억엔(약 44조5000억원)을 돌파한 상태다.

관건은 콘텐츠 전략이다. 픽코마는 광고 게시 등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접고 ‘사람들의 만화에 대한 애착’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모험을 통해 다소 기적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동일한 콘텐츠, 플랫폼 전략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대목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으로만 성공한 것은 아니며, 다양한 큐레이션 전략을 구사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 정설이다.

픽코마도 콘텐츠 파워에 집중하면서 만화시장에서 보여준 큐레이션 전략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서도 재연해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