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수산담당 MD 여형희 대리가 대만산 갈치를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업계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치며 다양한 기획상품으로 소비자 마음을 잡아야 하는 대형마트들은 값싸고 질 좋은 상품, 소위 대박상품을 찾아야 하는 화두를 안고 있다. 때문에 상품기획자(MD·Merchandiser)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는 요즘이다. 최근 어획량 감소로 국내 갈치 가격이 고공행진하자 국내산과 비슷한 대만산 갈치를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는 롯데마트의 수산담당 MD 여형희 대리를 만났다.

잠실 주공아파트에 사는 주부 김영주(43)씨는 최근 롯데마트에서 국내산 갈치보다 20~30% 저렴한 대만산 갈치를 구매했다. 항상 국내산을 고집하는 그녀이지만 최근 어획량 감소로 수산물 값이 치솟으면서 지난해 4800원 하던 갈치가 올해 7800원으로 오르자 차마 국내산 갈치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외국산이라는 것이 정서에 맞지 않아 갈치를 꼼꼼히 살펴보니 국내산과 모양이 비슷할 뿐더러 크기도 크고 살도 많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격도 300g이 5600원이라 국내산보다 20~30% 저렴하다.

국내산 갈치 가격이 오르자 외국 수산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국내 정서에 대안상품으로 대만산이란 카드를 뚝심 있게 밀고 간 사람은 롯데마트의 수산담당 MD 여형희 대리였다.

“국내산 갈치 가격이 높아지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죠. 어획량 감소로 가격이 올랐다고 ‘내 탓이 아니네’ 뒷짐만 질 수 없잖아요.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체상품이 필요했어요. 문득 갈치가 많이 나는 제주 해역 주변의 일본 오키나와와 대만이 눈에 들어왔죠.

대만에서도 갈치가 많이 잡힌다는 현지 정보원들의 소식에 바로 시세를 확인하고 대만으로 건너갔어요. 직접 보니 신선한데다 갈치 크기도 크고 가격도 저렴하더군요. 외국산을 달가워하지 않는 국내 정서에 우려를 했지만 워낙 국내산 갈치 가격이 높아선지 소비자들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롯데마트에서 수산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여형희 대리는 쉽게 말해 수산물 바이어다. 다른 MD들도 그렇듯 그 역시 상품 기획부터 상품 확보, 매장의 판매까지 책임을 진다. 매일 아침마다 포항, 여수,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시세 정보를 파악하는 그에게 새벽마다 걸려오는 시세 정보 전화는 일상이 됐다.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철 어류를 확보하고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내놓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전국 각지의 어류 시세를 꿰뚫고 있지만 시장의 흐름을 보기 위해 그는 수시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간다.

“수산시장에 가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가 많아요. 주문진이나 속초에서 나는 도루묵이 죽변에서 온다던가 하는 경우죠. 그러면 바로 납품업체에 죽변 현지 시세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 경매를 통해 물류를 확보하기도 해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물량 확보와 가격 경쟁은 수산MD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가 가장 긴장하는 시기는 당연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기도 하지만 금어기(禁漁期)가 풀리는 8월 15일부터의 꽃게 철이다.

꽃게는 산란기인 여름에는 어획이 금지돼 있다. 8월 15일부터 금어기가 풀려 가을 꽃게잡이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 가을 꽃게 확보는 8, 9, 10월 마트의 매출을 좌우한다. 이 시기 효자상품인 꽃게가 한 달에 올리는 매출액은 15~20억, 10월까지의 3개월 매출액은 대략 60억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대형마트들은 꽃게를 확보하자마자 곧바로 할인행사를 벌여 매년 경쟁사와 비교되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가격을 낮추려면 물량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한정된 어획량 속에서 최대한 좋은 꽃게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때문에 봄부터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특히 현지 업자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1㎏당 500원 더 주겠다”는 말에 뱃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바다에서 인맥과 자금력을 총동원한 물량 확보 전쟁은 바로 경쟁사와의 가격경쟁으로 이어진다. 경쟁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치 입찰가로 판이 갈라지는 현장처럼 경쟁사보다 10원이라도 저렴하게 책정이 되면 그 해 꽃게장사는 풍성해진다.

어떤 상황이 와도 융통성을 발휘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 상품을 기획하고 물량을 확보해 낼 것 같은 그지만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수산MD의 숙명이란다. 시간을 들여 상품을 기획하고 전단지 작업 막바지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태풍이 몰아쳐 기획이 무산되는 경우가 그렇다.

또 산지에 직접 가 현장을 누볐음에도 불구하고 물량 공급이 제대로 안 되거나 해외 수산물이 세관에서 통관이 안 될 때도 수산MD 업무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이다. 최근 MD의 전문성이 논의되며 MD의 자격증 시대가 거론되는 부분에 대해 여형희 대리는 이론보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산MD를 하기 위해 딱히 필요한 자격증은 없어요. MD의 능력이란 것이 현장에서 발로 뛰며 쌓는 경험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시험제도에 의해 판가름되진 않지요. MD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감각’입니다. 예를 들어 갈치를 두고 소비자들이 얼마 정도면 갈치를 구매할까, 아닐까를 판단하려면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선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이론적인 자격증으로 판단될 수는 없겠죠.”

한정된 어획량 속에서 신선식품을 다루는 수산분야는 업계 간의 경쟁이 여느 곳보다 치열한 곳이다. 때문에 정보력은 기본. 현지 어부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강단 있는 성격과 넉살도 필요하다. 물가가 올랐을 때 국내산의 대체품으로 기획되는 외국산 어류의 특징과 맛에 대해서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현장에서 발로 뛰며 각종 노하우를 몸으로 익힌 베테랑 MD들에게 자격증의 소지 여부는 필수가 아닌 선택일 뿐이다. MD가 외국산 생선의 맛을 확인하기 위해 요리를 하다 보니 일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결국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쌓게 되는 노하우만이 베테랑 MD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원영 기자 uni3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