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대법원이 12일 참여연대가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근거자료 일부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고, 통신사들은 표면적으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참여연대는 대법원의 판단을 두고 “대법원 판결은 통신 서비스의 공공성과 민생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국민의 알 권리 등이 통신사업자의 영업비밀보다 우선한다는 원칙, 통신사에 대한 국가의 감독규제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가계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각자의 의견 차이와 더불어, ‘이동통신 서비스를 과연 공공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가’ 등의 다양한 논의를 끌어내고 있다. 주파수는 국민의 재산이기 때문에 공공 인프라의 성격을 가지고, 이를 활용하는 통신사들의 이동통신 서비스도 공공의 개념으로 판단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가계통신비 인하로 이어지는 전략도, 주파수의 공공 인프라에 대한 담론도 아니다. 바로 기업비밀과 알 권리의 충돌이다.

기업비밀은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영업비밀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국가도 적극 도와줘야 한다. 물론 국가가 간혹 기업의 영업비밀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도 생긴다. 산업재해가 발생해 원인을 찾아야 하거나, 영업비밀 자체에 논란이 벌어질 경우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신중하게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알 권리와 기업비밀 공개의 기회비용을 냉정하게 따져 각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알 권리는 헌법이 정한 권리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도 위험하다. 기업비밀이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결국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치우친 현실이다. 고용노동부와 삼성전자가 벌이고 있는 기업비밀 공개논란을 봐도, 둘 사이에서 절묘한 기회비용을 감안한 절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삼성을 추격하기 위해 기업과 국가가 똘똘 뭉친 중국은 앉아서 박수를 칠 것 같다. 그런데도 오로지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계산과 압박만 판을 치고 있을 뿐 기업의 처지에서 기업을 생각하는 일은 없다. 과연 이것이 맞는 길일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법원 판결이 난 직후 “통신비의 공익적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계기”라면서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원가비용이 공개되면 제한적이지만 가계통신비 인하의 논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에는 정부 부처로서 냉정하게 기회비용을 살피지 않고, 무작정 한쪽으로만 진격하려는 의도가 보여 안타깝다.

통신업은 기간 사업이지만, 엄연히 민간 통신업체들이 경쟁하는 민간 시장으로 분류된다. 최소한 민간 시장의 규제를 말하려면 최소한의 고민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역지사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