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2020년 김하나 씨(가명)는 야근을 끝낸 후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바로 거실로 직행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안모드가 자동으로 해제돼 거실 조명이 켜졌기 때문에 따로 조명을 켜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다. 거실 조명이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휴대폰으로 지난주 금요일에 주문한 택배가 오늘 도착했다는 정보와 외출한 사이에 방문한 사람들의 정보가 떴다. 휴대폰을 확인하면서 인공지능 비서에게 날씨를 물어봤다. 내일도 어김없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쁘다는 소리에 마스크를 챙겼다. 저녁을 먹지 않은 탓에 야식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주방 모니터에 대고 “닭볶음탕”을 말하고 화면에 나온 레시피를 보며 야식을 만들어 먹었다. 잠들기 전 인공지능 비서가 모아놓은 국내외 주요 뉴스를 한 번 훑어본 후 잠에 들었다.

인공지능(AI)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같은 장면들이 실생활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주택인 아파트는 이제 더 이상 콘크리트로 만든 ‘집’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거대한 ‘스마트기기’로 변모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통신사들과 손잡고 AI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홈 개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차별화 전략에 나서고 있다.

 

건설사, AI 아파트 각축전

현대산업개발은 4월 12일 용산 본사에서 HDC아이콘트롤스 및 LG전자와 스마트홈 등에 대한 신기술 개발 협력을 위한 3사 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건설사는 음성인식 등을 포함한 AI홈로봇 신기술 개발 등을 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앞서 지난 2월 KT와 AI 아파트 서비스 제공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T의 AI플랫폼 ‘기가지니’와 현대건설이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 플랫폼 ‘보이스홈’을 연동해 입주민에게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파트에 설치된 AI 시스템과 KT의 기가지니 플랫폼을 통해 조명과 난방, 가스 등 비트인 기기와 사물인터넷(IoT) 가전제품을 제어하게 된다.

삼성물산은 이미 ▲음성인식 홈패드 ▲음성인식 홈큐브 ▲음성인식 주방 TV폰 등 세 가지로 AI 음성인식 시스템을 구성했다. ‘외출모드’라고 외치면 엘리베이터가 대기하고 동시에 방범모드가 설정된다.

GS건설은 각종 정보기술(IT)을 자사의 ‘자이(Xi)’ 브랜드 아파트에 적용해 스마트홈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 최초로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도입했고, 카카오와 협업해 AI 아파트를 조만간 선보일 계획이다. 홈네트워크 시스템은 집 밖에서 스마트폰 기기를 활용해 가스밸브나 조명, 난방 등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밖에도 단지 소식과 날씨 등을 전용 사이트를 개설해 알려주고, 해당 사이트에서 약 14만권의 전자책을 비치한 ‘아파트 전자책 도서관’을 운영해 주민 만족도를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AI 아파트는 어디?

그렇다면 이 같은 AI 아파트는 어디에 건립될까. 현대건설은 올해 분양하는 아파트부터 순차적으로 AI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개포8단지를 재건축하는 ‘디에이치자이 개포’와 김포 ‘힐스테이트 리버시티’ 등에 보이스홈 서비스가 들어간다.

GS건설은 반포 한신4지구를 재건축하는 ‘신반포메이플자이’에 AI를 도입한다. 이 단지는 음성식인과 대화형 시스템을 구축해 친구나 비서에게 대화하는 형태로 각종 생활정보 알림 지원과 검색기능을 제공하는 홈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포스코건설은 AI 등 첨단기술로 구성된 홈 서비스와 집주인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청주시 수곡동 잠두봉 공원에 ‘청주 더샵 퍼스트파크(1112가구)’와 경기도 성남시에 분양하는 ‘분당 더샵 파크리버’(671가구) 모두 AI 음성인식과 문자 기반의 챗봇(Chatbot)과 같은 ‘대화형 더샵 스마트홈’이 적용된다. 스마트홈은 사용자의 의도를 확인해 명령을 전달받는 ‘홈 비서’다. 예를 들어 입주자가 “보일러 좀 켜줘”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홈 비서는 “어느 방 보일러를 켜놓을까요”라고 되물어본다.

대림산업은 지난해 5월 분양한 서울 성수동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에 기존의 스마트홈 기술에 음성인식 IoT 기술을 접목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향후 순차적으로 적용 단지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가격 부풀리기? 주거문화의 새로운 지평?

이 같은 AI 서비스가 분양가가 높은 곳에서만 적용될 수 있고 이용료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설계단계부터 AI, IoT기기가 빌트인 형식으로 들어가는 등 시스템 구축 비용이 분양가에 포함돼 가격 상승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빌트인 제품이 애프터마켓 제품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 현재까지 주요 건설사들이 밝힌 AI 도입 아파트가 대부분 강남권역에 분포돼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김우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스마트홈이 유행할 당시 대부분 분양가가 비쌌지만 당시에는 비싼 만큼 주민들의 활용도가 떨어져서 각광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인터뷰)“지속가능한 스마트홈 되기 위해서는 플랫폼 서비스 비즈니스로 발전해야”

이처럼 건설사들이 경쟁하듯 AI를 활용한 스마트홈 공급에 나선 가운데 ‘플랫폼 비즈니스’로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우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4월 11일 <이코노믹리뷰> 인터뷰에서 “현재 건설사들이 공급하고 있는 스마트홈은 최근 기술발전에 힘입어 입주민들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설계되고 일방으로 공급되는 모습을 띠고 있다”면서 “과거 ‘인텔리전트 아파트’가 반짝 흥행했다가 사라진 것처럼 쌍방향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일시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텔리전트 아파트’는 현재 ‘스마트 홈’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지녔다. GS건설이 2007년 톱스타 이영애를 모델로 내세우며 ‘인텔리전트 라이프(Inteligent Life)’를 누릴 수 있는 상품으로 내놓은 이 아파트 상품은 초고속 광통신을 기반으로 한 홈네트워크 시스템과 토털 시큐리티 시스템(보안), 무인단말기(키오스크·마스터키) 시스템 등을 적용했다. 그러나 입주민의 선호도 조사 실패와 높아지는 분양가 등의 문제로 시장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김유영 연구위원은 “그 당시와 현재 기술력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가격의 부담이 당시보다 낮아지고 기술력의 활용 역시 조금 더 좋아질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AI 아파트라는 것은 커넥티드 홈(Connected-Home) 즉 정보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집이란 뜻이다. 현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4차 산업 혁명이라는 개념에 사이버 물리 시스템(CPS, Cyber Physics System)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환경에 대한 정보를 AI가 받아들이고 생성되는 데이터를 통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AI가 판단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 기능을 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바로 ‘플랫폼 비즈니스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AI 아파트를 보면 고가의 최신장비가 아파트에 들어와도 그걸 쓸 수 있고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요소가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플랫폼 비즈니스’란 네트워크 효과를 사용해 사용자들을 많이 모으고 공급자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AI 아파트가 지속가능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기본 구성이 사용자와 공급자 간의 양면 네트워크”라면서 “그러나 현재의 아파트는 그렇지 못하다. 건설사는 스마트홈을 공급하는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예컨대 스마트홈에서 냉장고 상태를 사물인터넷이 인지를 한 후 사용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의 재료가 떨어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11번가나 G마켓 등을 통해 주문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진정한 AI 아파트”라면서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필요를 쇼핑뿐 아니라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중간 역할을 건설사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서비스가 제공이 돼야 입주한 사람들이 AI 아파트를 구입할 때 비싼 집이라는 인상보다는, 집을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를 운영해 수익을 얻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선호하게 될 것”이라면서 “입주자를 만족시켜줄 때 지속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