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기업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기업가정신을 몸소 보였던 마지막 CEO라는 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국내에서 기업가정신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사실상 이들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한국 경제를 새롭게 짊어지고 갈 신기업가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도전하라.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 포스코와 함께라면 꿈은 현실이 된다.

지난 27일 대치동 포스코 본관 오후 2시 정각.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서관 4층 행사장에 들어섰다.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과 윤상직 지식경제부 1차관이 뒤를 따랐다. 포스코의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 개최를 축하하는 자리다.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를 개최합니다. ”정 회장의 한마디에 행사장을 찾은 500여명의 관계자들이 환호했다. 윤 위원장과 윤 차관은 장내가 떠나갈 정도로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살렸다. 취임이후 받은 가장 큰 호응에 정회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신기업가정신을 포스코가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어쩌보면 당연한 반응처럼 보인다. 기업가정신에 굶주린 업계에 포스코가 새로운 기업가정신을 확산시키는 주인공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는 아이디어를 사고 파는 장터다. 사업 아이디어를 소개하면 벤처 투자자가 투자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한다. 사업성이 부족해도 좋다. 기술 관련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다시 도전하면 된다. 한마디로 자본의 벽에 부딪히던 청년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한 장(場)이다. 청년 벤처의 천국,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지만 국내에 도입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인터넷 메신저 만든 이스라엘 청년 2명의 교훈
포스코의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실업률 문제가 한국 경제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지 않고 직접 만들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공짜는 물론 아니다.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문제는 기업가정신 아니, 신(新)기업가정신이다. 과거 CEO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정준양 포스코회장(오른쪽 두번째)과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청년 벤처기업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보이고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이란 위험과 불확실성에도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험과 창의적인 정신이라고 했다. 혁신을 바탕으로 이뤄진 도전은 경제 발전과 기술 진보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신기업가정신은 기업가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차이가 있다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성공에 있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메신저는 1996년 이스라엘 청년 2명이 만들었다. ‘인터넷상에서 친구나 동료를 찾아 말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발단이 됐다.

즉각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들의 아이디어는 미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인 AOL이 매입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시켰다. 인터넷 활성화에 따른 작은 변화의 시도는 기술 진보의 원동력이 됐다. 마크 주커버그는 또 어떤가. 메신저와 비슷하면서도 포괄적 개념의 페이스북을 만들어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이 같은 점에 주목한 듯하다. 정 회장은 “벤처기업 성공 스토리를 많이 만들어 가슴에 큰 꿈을 품은 청년 기업가에게 보다 많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포스코만의 고유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포스코만의 고유하고 창의적인 방식은 무엇일까. ‘용기있는 사람에 정성을 쏟고 기술에 올인 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코의 창립 정신인 동시에 그동안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포스코의 창립 정신은 벤처정신을 뿌리로 두고 있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없다면 지금의 포스코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든 도전정신 뿌리 깊은 전통
1970년 4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박 명예회장은 포항에 제철소 건설을 시작했다. 턱없이 부족한 자금과 기술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게 되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 명예회장(당시 사장)에게 물었다.


박 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박 사장은 박 전 대통령에 게 독대를 요청했다. “설비 조달에 관한 재량권을 인정해 주십시오.” 제철소 건설의 전권을 달라고 했다.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박 전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겠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기업가정신이 효과를 발휘해서일까. 그는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2개월 뒤인 1973년 6월, 국내 최초로 고로를 만들어 쇳물을 쏟아냈다. 포스코는 이후 4번의 확장 사업과 광양제철소 준공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010년에는 세계1위 철강업체로 자리매김했다. 42년 만에 이룬 쾌거다.

포스코는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을 제외하곤 매년 2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거뒀고, 지난해에는 60조5000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기술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만약 박 명예회장이 중도에 포기를 했다면? 지금의 포스코는 존재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이를 엿볼 수 있는 일화 한 토막.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포스코 같은 철강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박 명예회장의 도전 정신은 벤처기업정신의 가장 한국적인 DNA였던 셈이다.

정 회장은 또 어떤가. 박 명예회장 못지않게 기업가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CEO다. 아이디어로 포스코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파이넥스 공법과 현재 개발 중인 수소환원제철법 개발은 정 회장의 머릿속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철광석 내에는 철 성분인 Fe가 산소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산화물인 Fe2O3 상태로 존재한다. 철을 생산하기 위해선 철광석 환원반응(고로에서 산소 제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철광석을 환원시킬 때 일산화탄소(CO)를 사용, 이산화탄소(CO2)가 분리됐다. 수소환원제철법은 일산화탄소 대신 수소(H2)를 환원가스로 사용해 이산화탄소 대신 물(H2O)을 만들 수 있다.”회의석상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포스코의 현재 중점 사업이 됐다.

도전 정신과 아이디어의 결합, 성공적 결과. 포스코가 열정과 도전 정신,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포스코는 임직원의 작은 아이디어에도 귀를 기울인다. 사업 가능성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본업인 철강사업의 성장을 꾀하다 보니 에너지 활용, IT, 건설 기술이 자연스레 발전해 실생활에 접목한 것도 있다. 일례로 지하철 스크린사업에 뛰어든 것도 직원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멘토·실탄도 마련 누구든 참여 환영
포스코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를 매분기마다 개최할 예정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벤처창업지원 사이트(www.poscoventure.co.kr)에서 항상 아이디어를 접수받아 지속적인 벤처창업 지원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했다. 지식경제부와 3년간 2600억원을 조성하는 협약을 체결, 벤처창업 지원에 사용될 자금도 마련할 방침이다.

일단 처음 개최한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는 성공적이란 평가다. 무엇보다 호응이 뜨거웠다. 지난 8월 26일부터 한 달 반 동안 277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대학생, 청년실업인, 직장인 등 지원자도 다양했다.

자동차 주행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 기업오케스트라 창단, 자동차 및 디지털기기 휴대용 보조배터리, 로봇 척추 치료기, 스마트기기 게임 개발, 모임 행사 대행 통합관리 서비스. 포스코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사업 내용들은 ‘포스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에 출품된 우수 아이디어들이다.

포스코는 이중 사업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초기 벤처기업 운영자와 아이디어 제안자 70명을 선발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1명당 10명씩 총 7개 그룹으로 나눠 멘토링을 지원했다. 사전 제안서 분석을 통해 우수 아이디어로 뽑힌 사람은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업화 방법도 전수받았다.

특히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에 성공한 휴맥스(셋톱박스) 변대규 대표, 메디슨(의료기기) 이민화 전 대표, 에바주니(쇼핑몰) 김준희 대표가 직접 나서 성공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의 성공 가능성이다. 제아무리 공약이 좋아도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시 접어둬도 좋다.

우수 아이디어로 선발된 정경웅 시그마테크 부사장은 “그동안 아이디어를 사업화시키는 각종 프로그램들에 비해 포스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가 가장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서류접수 등 복잡한 철차에 포기를 해야 했지만 간단한 절차만으로 접수가 가능했던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유경호 스윗토리 대표는 “1회성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는 점이 좋았다”고 밝혔다. 보여주기식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지원이야말로 벤처기업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란 점을 꼽은 것이다.

벤처 살리기 생태계 마련 강력한 의지
포스코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의 일련의 벤처지원 프로그램을 ‘포스코 벤처 파트너스(POSCO Venture Partners)’라고 정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다양한 창업지원 활동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게 포스코만의 최대 장점이다.

포스코는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를 개최하기 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 등을 개최한 바 있다. 공모분야도 다양하게 진행했다. 지난 7월 실시한 신사업 아이디어를 공모전의 경우 1363건의 아이디어가 접수, 우수 아이디어를 선정해 사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벤처창업 지원을 촉진하기 위해 연내 벤처기획팀을 신설할 계획도 세웠다.

고용창출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벤처기업 투자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포스코가 비즈니스 인큐베이터(Business Incubator)와 엔젤투자(Angel Investor)를 통해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 벤처기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얘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회장이) 직원, 패밀리사 뿐만 아니라 대학생, 일반인 및 중소기업 등 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신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사내벤처와 같이 지원해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과 젊은이들의 창업정신을 북돋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벤처 정신 활성화의 일환으로 2004년 국내 최초로 성과공유제를 도입, 운영 중이기도 하다. 기존 1차 협력기업에서 2~4차 협력기업으로 확대했다. 성과공유제는 중소기업이 공급하는 품목의 수명 향상 및 원가절감, 수입품목 국산화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할 경우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하는 제도다. 2011년 포스코가 지급한 성과공유제 보상금은 벌써 216억원(9월 기준). 올 연말까지 성과공유 보상금은 3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포스코가 야심차게 준비한 아이디어마켓플레이스. 포스코의 ‘新기업가정신’이 제2 벤처 붐을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타벤처 CEO 3인의 “엉뚱함을 사업화했다”
“벤처기업의 성공 방정식은 하나다. 남들과 달라야 한다. 과거의 성공방식대로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성공 벤처기업 1세대 이민화 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 그는 독특함만큼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메디슨(현재 삼성메디슨) 창업자다. 초음파진단기 제조기를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초기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항목이다. 사업투자자들이 경쟁업체를 묻곤 등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초음파 진단기를 만드는 업체가 GE와 지멘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성공을 거뒀던 배경은 뭘까. 도전 정신과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이민화 이사장은 “실패보다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엉뚱한 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성공의 발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변대규 휴맥스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남들과 달라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사업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얘기다. 멋있고 좋아 보이는 아이디어에 집착해선 백전백패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고객도 모르는 욕구를 먼저 이해하고 상품화시켰다. 그래서 천재란 소릴 들었다. 일반인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시장을 뒤져서 시장에서 필요한 게 뭔지를 뒤지고 그것을 찾아 사업에 나서는 게 성공 확률을 높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는 벤처기업인다움을 요구했다. 벤처기업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이뤄놓지 않은 것을 상태를 장점으로 승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휴맥스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회사 설립 이후 디지털 셋톱박스를 만들었다. 디지털 기술로 아날로그 산업의 중심이었던 가전산업에 결합시켰던 게 성공의 계기가 됐다.

기존 아날로그 사업자는 기존 사업 때문에 방향성을 쉽게 전환하지 못해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변 대표는 “벤처기업을 만드는데 있어 아이디어가 세상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 김준희 에바주니어 대표. 그는 남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김 대표가 온라인 의류 쇼핑몰을 만든 것은 2006년. 당시만 해도 옷은 무조건 입어보고 만져보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는 ‘옷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성공 요인이 됐다고 했다. 또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창업 붐이 일고 있다. 하루에 1000개가 생겨나지만 995개가 망한다고 한다. 온라인은 가격 조회가 쉽다. 클릭 한번으로 이동도 수월하다. 10원만 가격이 싸도 소비자는 움직인다. 가격이 아닌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김세형 기자 fax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