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고 여행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국적인 배경과 한복의 조화로움이었다. 특히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언덕에서 노오란 저고리와 검정 양단 치마는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여행 중 한복을 입는 것은 일종의 패션 코드다. 한복을 입고 무엇을 하는 것=전통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무엇으로 이해하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한복이 좋아서, 한복 스타일이 좋아서 한복을 선택해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것 외에 어떤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바로 우리와 다른 세상과 문화 속에서 살던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케이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식당 앞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졌다. 그녀는 전통 한복을 입고 있는 필자와 일행의 모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어떤 이유로 전통옷을 입고 러시아에 오게 됐는지, 한복을 본 소감과 놀라움을 나누었다. 길가에서 한참 동안이나 반가움을 표했던 그녀와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다. 한국인 친구가 있어 한국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친밀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그녀는, 말로만 들었던 한국의 전통옷을 러시아 길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몰랐다고 했다. 그녀의 호기심, 우리의 반가움은 그날 오후 일정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케이트는 처음 만난 우리를 그녀만의 평화로운 장소로 안내했고, 그날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꽁꽁 언 바다와 멋진 노을을 감상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인기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가끔 차를 몰고 들어오는 커플들을 보며 현지인들에게 특별한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sns를 통해 연락을 하던 우리는 얼마 전, 한국에서 재회했다. 그때처럼 한복을 입는 필자는 케이트와 반나절 데이트를 했다. 케이트와 케이트의 친구 줄리아가 입을 한복을 골라주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함께 살펴 본 여러 한복 중 짧고 긴 저고리는 시대마다 다른 디자인과 유행의 산물이었다. 케이트는 짧은 저고리와 수가 놓인 사(한복 옷감 중 얇은 소재)로 만든 한복을 골랐고, 줄리아는 장저고리와 양단소재로 만든 허리치마를 선택했다.

러시아의 전통의상 중 여성이 입는 옷은 사라판이라고 하는 흰 블라우스와 소매 없는 긴 치마다.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통한복의 형태가 19세기에 나타나 정착한 것처럼, 러시아 전통 옷 사라판도 19세기 형식이 자리 잡았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이 직물과 실제 입는 의복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한국이나 러시아나 비슷했다. 기술의 발전은 더 편한 삶을 제공했지만 전통적인 핸드메이드 방식은 다품종 대량생산 체계에 밀려 실용적이지 않은 것, 혹은 매우 낯선 대상으로 치부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전통 옷에 대해서 여러 소감을 나누었다.

필자가 직접 입고 여행을 다니며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들이 직접 한복을 입고 활동하는 것도 특별했다. 여행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그 나라만의 특색’이 있는 무언가를 경험해 보고 싶어 한다. 한국 특유의 속도감 있는 에너지, 한식을 경험한 두 명에게 한국의 의복 한복은 분명히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입고 두르는 방식, 몸에 걸치는 순서와 옷을 만드는 감 자체도 지역의 특색과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 사라판 모두 과거에는 상위계급 여성에서 농민들에 이르는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복이었다. 이제는 멀어지고 있는 전통과 문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국적인 배경 속에서 여행해 온 한복은, 동시에 익숙한 배경에서 이국적인 사람들과 만났다. 국내를 떠나 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던 한복이 다시 먼 걸음을 걸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여전히 여행 중인 셈이다. 한복을 입고 또 다른 문화를 느끼고자 했던 한복여행은 현지에서 친구를 만들었고, 그 친구는 한국에 와 필자가 입었던 한복을, 문화를 경험 중이다. 우리는 한복으로, ‘서로의’ 문화여행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