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정부가 내놓은 조선산업 발전전략이 2016년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재탕 성격이 강하지만 국내 조선업계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발주 관련 부분이다. 조선업계의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 줄 수 있는 지표가 발주량이기 때문이다.

 

공공발주 조선업계 부활 마중물?

정부는 이번에 해운재건과 공공발주를 통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총 240척의 배를 국내 발주로 채우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이 정도 물량이면 수주 춘궁기에 주린 배를 채우고 호황기에 대비한 인력과 설비를 유지할 수 있는 물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해운재건에서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국내 선사를 통해 올해부터 2020년까지 총 200척 이상의 발주를 추진한다. 이 중 벌크선은 140척, 컨테이너선은 60척이다.

대형 조선업체 고위 임원은 “정부가 국적선사를 동원해 발주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일 국내 조선소에 2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이상급 12척과 1만4000TEU급 8척 등 20척의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조선소가 선가, 납기일 등을 정해 입찰에 참여하면 현대상선은 조선소를 정해 건조의향서(LOI)를 체결하고 발주를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공발주에서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총 5조5000억원 규모로 최소 40척이 계획돼 있다. 공공발주에서는 군함이 올해와 내년 각각 10척 발주가 예정돼 있다. 규모는 올해 1조6278억원, 내년이 3조6971억원으로 전망됐다. 해경은 내년 방제정 1척(746억원), 해양수산부는 순찰선을 올해 6척, 내년에 7척 총 1270억원 규모의 발주를 할 계획이다. 관세청은 내년에 밀수감시정 3척(69억원)을 발주할 계획이다.

이 계획을 보면 공공발주에서 군함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조선 업체 중 1000t 급 이상의 대형 군함과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업체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2곳 뿐이다. 고속정과 같은 중소형 군함은 STX, 한진중공업 등이 건조하고 있다.

공공발주가 진행되더라도 현대중공업은 공공발주에 참여하지 못해 일감이 대우조선해양으로 몰릴 공산이 크다. 현대중공업은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에 뇌물을 줬다고 대법원이 판단함에 따라 부정당업자로 등록돼 현대중공업은 내년 11월 말까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입찰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군함 공공발주에 참여할 수 없으면 대형 군함일 경우 대우조선해양으로 일감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정 업체의 수주 독점으로 가격 인상, 품질 저하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충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공공발주 계획을 발표하면서 특정 업체를 배제하거나 혜택을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군함 건조 계획은 수년 전부터 계획이 돼 있는 만큼 올해와 내년에 특별히 더 물량을 증가시킬 수는 없다”며 이런 관측을 일축했다.

 

 

국내 조선업계 벌크선에 집중해야

정부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벌크선 140척과 컨테이너선 60척을 국내 선사가 발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내 조선업체의 일감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조선업계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정부의 국내 발주 추진으로 조선소들의 도크가 채워지면 해외 선사와의 협상서도 유리한 쪽에 설 수 있다”면서 “벌크선 시장이 1만척 정도 되는 가장 큰 시장이라서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중고선박 수를 보더라도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500여척밖에 되지 않아 훨씬 큰 시장인 벌크선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것”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우리가 10여년 동안 거의 신경 쓰지 않아 중국에게 빼앗긴 벌크선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에 따르면 벌크선은 크기에 따라 최소 2개월에서 최대 6개월 사이에 제작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조사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17.6만t에서 18만t 사이의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의 가격은 지난해 3월 말 4200만달러에서 올해 같은 기간 4600만달러로 상승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10월 31일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서 벌커선을 중소형 탱커, 컨테이너선과 해양플랜트 지원선, 특수선과 함께 경쟁열위 분야로 평가했다. 당시 정부는 “경쟁국과 기술격차가 미미하고 원가경쟁력이 부족해 수주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국내 조선업계가 벌크선에 집중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가격과 금융지원, 화물확보 등 전제조건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전문가는 “3년간 200척을 한국 조선소에 발주해도 건조할 역량은 충분하다”면서 “벌크선 발주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건조 벌크선은 중국 조선소에 비해 품질이 좋지만 가격이 비싼 만큼 금융 지원과 화물 확보 등 사업성이 담보돼야만 높은 가격으로도 발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문가는 “벌크선 건조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조선소가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이들 업체가 수주한다고 해도 ‘빅3’에 출혈이 생기거나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삼성중공업이나 대우조선행양은 경쟁력과 효율 등의 이유로 벌크선박을 건조하지 않겠지만 아마도 현대중공업의 군산 공장과 목포의 삼호중공업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