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국내 대형 조선사인 삼성중공업은 4월 9일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격을 주당 5870원으로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삼성중공업은 유상증자 완료 시 총 1조4088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지난 3월 유상 증자를 통해 1조235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우리나라의 간판 조선소인 두 회사의 유상증자는 자금난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조선강국 코리아’가 직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조선강국 코리아’는 과거의 영화다. 현재 한국 조선산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극심한 불황과 선가하락, 경쟁국 추격으로 영업실적이 악화돼 중견 조선사는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인력 축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형 조선사인 성동조선은 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STX는 법정관리를 겨우 모면하고 자력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대형 조선 3사도 예외는 아니다. 자체 뼈를 깎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조선 3사는 2016년부터 올해 말까지 도크 수를 31개에서 24개로 23% 축소하고, 직영 인력 규모를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 수준으로 32% 감축하는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특히 부실규모가 크고 발주전망이 불확실한 해양플랜트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다행인 것은 글로벌 시황도 점점 회복 추세라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은 올해 1분기 수주실적 세계 1위에 올랐다. 올해 1분기 한국의 누적 수주량은 263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2위 중국의 196만 CGT, 3위 일본의 80만 CGT를 앞질렀다. 전 세계 1분기 발주량도 2016년 1분기 305만 CGT에서 올해 1분기 623만 CGT로 2배 이상 늘었다. 척수로 따져도 159척에서 186척으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4월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내놓았다. 조선산업이 아직은 글로벌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조선강국 코리아가 부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조선산업 6대 발전전략’으로 조선강국 코리아 부활?

정부는 우리 조선산업에 글로벌 경쟁력이 있고, 세계 조선 시황도 회복에 있다며 6대 발전전략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6개 발전 전략은 △조선사 간 경쟁 구도 및 사업 재편 △중소형 조선사 수주 경쟁력 제고 △친환경 LNG선박 중심 시장창출과 공공발주 등 일감확보 확대 △자율운항·친환경 등 미래시장 선점 위한 투자 확대 △전후방 산업 상생을 통한 산업 생태계 강화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유지 및 호황에 대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대형 조선 3사는 자구계획을 이행하면서 체질 전환과 핵심 경쟁력 유지에 나선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조원대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고, 인력 구조조정 등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자구계획 이행률은 현대중공업이 100.5%, 삼성중공업이 71.1%, 대우조선해양이 47.4%다. 정부는 시장여건과 경영정상화 추이 등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검토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유상증자에 성공했고 삼성중공업도 유상증자 절차가 순항하고 있어 수주절벽에 따른 심각한 자금난은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형 조선사는 ‘조선해양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19개 과제에 370억원을 지원하는 등 중소형 조선사에 특화된 설계와 생산 기술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장창출과 공공발주는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실질적인 발주로 조선사들의 일감을 가져다 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공선을 중심으로 시범사업과 공공발주 확대를 추진한다. 예를 들면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의 발주를 늘린다거나 민간 부분에서 LNG연료 추진선 시범발주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규제 움직임에도 선제대응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2020년부터 전 세계 선박들은 예외 없이 배출가스 규제를 받는다. 항산화물 배출량을 3.5%에서 0.5%로 낮춰야 한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선박을 소유한 회사들은 연료를 기존의 값싼 벙커C유 대신 선박용 경유(MGO)나 LNG를 써야 한다. 선박연료를 바꾸려면 엔진계통을 모두 바꿔야 하는데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만큼 조선사들도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국내 조선사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총 200척 이상을 발주토록 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벌크선 140척, 컨테이너선 60척을 2020년까지 국내 조선사가 발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공공발주에서는 5조5000억원 규모로 내년까지 발주를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방위사업청에서 올해와 내년에 각각 10척 이상의 군함을 발주할 예정이다. 금액은 올해 1조6278억원, 내년에 3조6971억원이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해경, 해양수산부, 관세청 등에서도 군함보다 규모는 적지만 17척가량의 배를 공공발주할 계획이다.

자율운항·친환경 투자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자율운항의 핵심 기자재와, 시스템 개발 등을 통해 제작과 실제 운항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또 항만지역의 미세먼지 배출을 줄이기 ‘친환경 실증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예를 들면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예인선을 LNG연료추진선으로 전환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금융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사를 위해 조선업에 다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제작금융 여진지원 등이 원활해지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청년인력 채용 확대 추진, 조선업 퇴직자 지원사업 등으로 고용 안정화도 꾀하기로 했다.

 

 

조선업계, “수주 춘궁기 극복에 도움”

이런 발전전략이 2008년 이후 10년간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온 조선강국 코리아 부활에 도움을 줄까? 정부는 수주 춘궁기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자평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조선업체가 향후 5년간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을 10% 이상 증대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발주물량을 향후 3년 안에 집중시켜놓았다

조선업계도 긍정 평가한다. 해운산업 재건을 포함해 발주를 늘리는 데 정부가 힘을 실어준다는 점을 의미 있게 평가한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해운과 조선은 전후방 사업으로 해운이 잘 되면 조선도 함께 잘 된다”면서 “공공부문 발주가 늘어나거나 상선 발주가 많아지면 국내 조선업체가 수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정부가 많은 발주를 위해 지원하는 것은 일감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조선업체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호평했다.

이성우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차장은 “조선과 해운은 상생이 필요한 산업”이라면서 “일감 확보 측면에서 정부가 공공발주를 포함한 국내 선사들의 발주에 신경을 쓰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 홍성인 연구위원도 “전 세계 조선시장이 살아나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이 할 수 있는 최적 물량에는 크게 미달한 상황”이라면서도 “정상적인 패턴에 진입하기 전까지 물량을 공공발주를 비롯한 국내 선사들의 발주로 채워주는 정책적인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탕, 현실성 결여, 해양플랜트 관련 대책 빠져 아쉬움

조선업계 전부가 이번 대책을 환영하거나 긍정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책이 2016년 10월 31일 나온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재탕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전문가나 조선업계 경영진도 있다.

당시 방안은 수주절벽 대응을 위해 2018년까지 7조5000억원 규모의 군함과 경비정 등 공공선박 63척을 조기에 발주하고, 2020년까지 1조원 규모의 선박펀드 등 3조7000억원의 자금을 활용해 75척의 발주를 지원하는 등 250척 이상 발주를 지원하기로 했다.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과잉공급능력 해소, 퇴직인력 재취업, 조선사 정상적 수주활동에 대한 RG발급 적극 추진 등이 포함됐다.

이런 이유에서 한 조선업체 고위 경영진은 “2016년 경쟁력 방안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인력 감축을 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3000명을 신규 채용하는 목표를 세운 것은 현실과 멀어도 한참 먼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고위 경영자는 “중소 조선사들은 인력감축으로 사실상 가동을 할 수 없는데도, 정부는 살아 있는 업체라고 간주하고 대책을 발표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지원 즉 RG발급이 적극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RG는 조선사가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선박을 제대로 건조하지 못했을 경우 선주에게서 미리 받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대신 물어줄 것을 보증하는 증서를 말한다. 조선업은 조선과 해운, 금융과 철강 등 4개 부문이 동시에 돌아가야 순항할 수 있는데 금융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고위 경영진은 “조선사가 정상으로 선박을 수주하려면 금융회사들이 RG를 발급해줘야 하는데 산업은행을 비롯한 어느 은행도 선뜻 나서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차입금의 만기가 돌아오면 예전에는 리볼빙을 했는데 요즘은 전액 상환을 요구하니 조선사들이 배길 재주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삼성중공이나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선 것도 차입금 상환압박을 하는 은행들의 경영행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발주가 나와야 하는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평가를 유보하면서도 해양플랜트 관련 대책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 관련한 계획들이 실제로 계약이 이뤄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더 나올 때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선사들의 발주든, 공공발주든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 등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해양플랜트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이 큰 손실을 입은 전례가 있지만 관련 역량이 축적되고 있는 상황인데 지원 대책이 나오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번 정책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정부도 해양플랜트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서 “현재 유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대책을 내놓기가 조금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로 유가 상승 등 해양플랜트 관련 사업 시황이 좋아지면 관련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