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조선과 반도체, 전자, 자동차는 대한민국의 제조업의 핵심이자 경제 견인차다. 분야에 따라 휘청이기도 하고 확대일로를 달리기도 하지만 이들 제조업종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이들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 조선업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의 성장도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와 반도체 업종은 다행히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 주기에 대한 이견도 엇갈린다. 총체적 난국이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의 흔들기도 격화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만연해진 반(反) 대기업 정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지만, 제조업의 중흥기를 이끈 기업들에 대한 공격은 도가 지나친 느낌이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인데 지나치게 그림자에만 천착해 빛을 어둠으로 채우려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당국의 행보는 논외로 하겠다. 당장 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 영업비밀 공개 논란만 봐도 기본적인 의사결정부터 큰 문제가 있다. 산업재해를 방지하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당국이 조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민감한 영업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도 무작정 강공일변도로 나가는 저의는 무엇인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 1항 7조에는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정보 비공개 대상으로 규정돼 있고 14조에는 엄연히 부분공개 가능성도 열렸다.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해 충분히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음에도, 산업재해의 원인을 밝히면서도 기업비밀도 지킬 수 있는 타협점을 무시한 이유를 묻고 싶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벌어진 대기업 오너 중심의 경영문제가 전혀 문제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모, 아니면 도’ 식의 자세로 특히 제조업에 쏟아지는 외부의 압력은 분명히 우리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에 깔린 제조업에 대한 알 수 없는 ‘깔보기’가 작동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제조업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ICT 기술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으로 ‘굴뚝사업=제조업’으로 격하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많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만 실체가 있다. 우리는 가끔 눈부시고 세련된 ICT 기술이 쇳가루 풍기는 제조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단언하자면 틀렸다. 지금까지 국내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에 예의를 갖추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제조업을 통해 성장했고, ICT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응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당장 구글과 애플 같은 기업을 뚝딱 만들 수 없다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힘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스마트제조 정책을 보라.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ICT 기술력으로 제조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올리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제조업은 이 정도의 취급을 받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유럽 대항해시대, 한때 포르투갈과 함께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지는 금과 노예를 빨아들이며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신사업인 무역업이 발달하자 스페인 국민들은 모두 그리로만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횡행하던 마녀사냥은 전국을 초토화시켰고 기본산업인 농업과 목축업은 완전히 붕괴했다. 16세기 후반 신흥국 영국에 밀려 몰락한 이유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지는 재화를 통해 항해사업은 물론, 자국의 주력산업인 농업과 목축업의 생산성을 늘려 탄탄한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발전시켰어야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