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용노동부가 첨단기업의 안전보건자료를 완전히 공개하거나 공개 청구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삼성전자가 제기한 정보공개보류 요청을 취소해달라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요청한 사실이 11일 확인됐다.

산업재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는 평가지만 정부가 나서 외국 기업에 이득을 줄 첨단기술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관 취임 전부터 삼성에 날을 세운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삼성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고용부는 지난 2월19일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시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를 전격 공개하기로 결정한 후, 경기 기흥·화성·평택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까지 공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작업장 내부의 대기질과 화학물질 종류 등 산업재해와 관련된 사안은 모두 공개하지만, 공정 구조와 개별장비 배치도 등 민감한 영업비밀은 공개할 수 없다는 삼성전자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삼성전자는 즉각 중앙행심위에 고용부가 정보공개하는 것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용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9일 산안법 개정안을 제출, 첨단기업의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거나, 공개 청구할 수 있는 길을 열며 포문을 열었다. 개정안에는 현장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100% 고용부에 제출하는 방안도 담겼다. 사실상 기업의 기밀보호를 무장해제시키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자,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법안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법안 상충의 문제도 생긴다.

산안법 개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진 후 중앙행심위가 부위원장 직권으로 보고서 정보공개보류를 결정하자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상정정책국장은 10일 "보고서를 통해 삼성의 영업기밀이 누출될 우려는 없다"고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다.

고광훈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장은 11일 "공개 보류결정을 취소해달라는 공문을 중앙행심위에 보냈다"고 말해 긴장은 극에 도달했다.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누출 우려를 반박하고 정보공개가 예정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 셈이다. 고용부는 향후 사태추이를 살피며 추가 상황에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은 통상 수백종에 이른다. 이 중 삼성전자가 어떤 브랜드의 화학약품을 쓰는지 공개될 경우, 반도체 공정기기의 위치와 배치를 분석해 기밀을 빼낼 수 있다는 점은 반도체 업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산업재해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공개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있지만, 고용부의 정보공개 판단 자체가 법률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9조 1항 7조에는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정보 비공개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14조에는 정보의 부분공개 가능성도 있다. 고용부가 충분히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오로지 삼성압박에만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정보공개를 강하게 추구하는 고용부 방침에는 김영주 장관 개인의 소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 장관은 농구선수를 거쳐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교육홍보국 부국장, 여성 최초의 상임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2004년 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원내 진입에 성공,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한 친노동계 인사다. 고용부의 산안법 개정안은 김 장관이 국회의원이던 2016년 10월 발의된 산안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내용과 유사하며, 그는 장관 취임 직전 "삼성반도체 현장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를 즉각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정보공개를 두고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당연한 알권리라는 주장과 민감한 정보유출이라는 반론이 충돌하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직면한 국내 반도체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의 직무를 축소하는 초강수를 통해 세밀한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라면서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인 삼성전자의 기밀이 만천하에 공개될 경우, 중국이 한국 정부에 고마워할 수 있는 아니러니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