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초·중·고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학교에서 받는 미술 교육은 사실 그리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고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미술의 역사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나오고, 그 부분을 안 배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배운 것도 아닌 애매한 교육으로 기억된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미술 감상 교육을 얼마나 받았을까다. 미술 역사를 배우는 것이 감상의 기초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역사는 역사일 뿐 어떻게 역사를 통해 감상하는지는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부분을 너무 늦게 깨닫고 교육하는 것은 아닐지 아쉬움이 남는다.

요즈음의 미술 감상 교육은 어떨까? 초·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펠드먼의 그림 감상법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펠드먼의 그림감상법은 ‘서술-분석-해석-판단’의 4단계로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첫 번째, 서술단계에서 작품의 작가, 사용된 재료와 기법 등을 확인해 본다.

두 번째, 분석단계는 화면의 전체적 짜임새와 구성, 작품의 형태, 크기, 질감 등을 작품 안에 보이는 색, 질감, 형태와 같은 시각적인 요소들을 분석해 본다.

세 번째, 해석단계로 작품의 인상, 작가의 의도, 제작배경 등을 알아보고 작품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이다.

네 번째, 마지막 판단 단계에서는 작품의 미술사적 의의나 장단점 등을 판단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림 감상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이런 까닭에 그림 감상법을 배운 세대와 배우지 못한 세대 사이에 감상에 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사진기술이 발달하기 이전, 모델 등 정물화를 주로 그렸던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작품을 보면 잘 재현했다는 감탄사가 감상의 일성이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사진기가 발달하면서, 사물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닌 그림을 통해서 상징성과 그 이면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현대미술에서는 어려운 감상이 될 수밖에 없다. 마르셀 뒤샹의 <샘>이나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같은 작품에 나타나는 현대미술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척하는 피곤한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된다.

현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정말 어렵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펠드먼의 그림감상법을 몰라도 현대미술을 몰라도, 우리에게 작품을 통해 미술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미술감상의 첫 번째 단추를 끼울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런 쉬운 감상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이보윤 작가의 그림이 그렇다.

이보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부하듯이 감상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이보윤 작가의 작품은 지나치게 과학적, 분석적, 지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가 자연을 만나듯이 작품을 대하면 된다.

이보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한 편의 시처럼 이렇게 설명한다.

 

조금 덜 마른 빨래, 여기저기 널려 있는 화분들, 아직 버리지 못한 봉투 안의 잡동사니.

오후의 참새들과 고요한 구름. 매일 지나치는 똑같은 길. 익숙한 풍경.

너무나 소소해 눈이 마주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그 모습들이 저는 좋습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보다

빠르고 화려한 무언가보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느리지만 따스한

내가 있는, 나와 함께 해주는 그 풍경이 저는 좋습니다.

평온한 건 지루하고 시시한 게 아닌

소소한 건 값어치 없는 흔해빠진 게 아닌

그 평온하고 소소한 따스함이 우리를,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줍니다.

‘집’은 우리의 소소한 행복을 유지시켜주는

엄마처럼 우리를 늘 품어주는 따스한 안식처입니다.

100평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마당이 있는 그림 같은 집에 살지 않아도

고단한 일 놓아두고 몸도 마음도 조용해질 수 있는, 내 마음 쉴 수 있는 그곳.

편히 걷다 보면 도착하는 익숙한 풍경이

진짜 쉼, 진짜 삶입니다.

설레어서 그린 집 하나, 신이 나 그림 집 하나, 소중해서 그린 집 하나.

제가 그린 집 하나하나가 마음의 쉼, 안식처입니다.

제 그림에서 소소하지만 소중한

마음 내려놓고 따스하게 쉴 수 있는 평온한 그곳을 만나기를 바래봅니다.

 

이보윤 작가의 작가 노트 중

 

이보윤 작가는 펜과 색연필, 그리고 자개를 이용해 종이 위에 편안하게 담담하게 우리 주변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면서 작업을 한다. 작가가 그리는 현대사회 풍경은 섬세하게 하나하나 진짜 ‘집’ 진짜 ‘동네’의 모습이지만, 그 색을 화려하고 사랑스러운 색을 활용해,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 모습을 좀 더 아름답게,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이보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는 감상하는 법, 그동안 우리가 아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그냥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어떨까? 오히려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그림을 잘 감상하는 방법은 아닐까? ‘그림을 즐긴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이보윤 작가의 작품을 즐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