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미국의 제재 레이더가 러시아를 정조준하면서 9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증시가 폭락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2년 3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제재 대상에 세계 최대 알루미늄 기업 루살(Rusal)이 포함되면서 국제 알루미늄 가격도 4주만에 최고치까지 급등했다. 

지난 6일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안을 발표한 후 첫 거래일인 9일. 러시아 주가지수 'RTS'는 1094.98포인트로 마감하며 하루만에 11.4% 급락했다. 지난 2014년 12월 16일 이후 3년 4개월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러시아발(發) 증시 혼란이 글로벌 변동성을 높이고 있지만 한국 증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2분기 계절적 요인에 추가경정예산, 기업 지배구조 개편 등 정책적 요소가 우리 증시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미국의 제재 레이더가 러시아를 정조준하면서 9일(현지시간) 러시아 증시가 폭락했다. 출처=위키미디어, flickr

미국‘푸틴 자금줄’ 겨냥에...러시아 주식∙외환∙채권시장 ‘요동’

미 정부는 1월 말에 작성한 이른바 ‘푸틴리스트’를 중심으로 17명의 러시아 정부 관료와 7명의 신흥재벌(올리가르히), 이와 관련된 12개 기업에 대해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모두 동결됐으며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과의 거래도 전면 금지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제재 대상에 세계 최대 알루미늄 기업 루살이 이름을 올린 것이 알려지면서 국제 알루미늄 가격도 4주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러시아의 알루미늄 생산량은 370만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7%를 차지했다. 루살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알루미늄 기업으로 전체 생산량의 1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는 올리가르히와 정부 엘리트들의 불균형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서 “크림반도 사태, 시리아 화학무기 지원, 서구 민주주의 전복 시도, 사이버 해킹 등 러시아 정부의 불안정 활동을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미 정부는 1월 말에 작성한 이른바 ‘푸틴리스트’를 중심으로 17명의 러시아 정부 관료와 7명의 신흥재벌(올리가르히), 이와 관련된 12개 기업에 대해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출처=미국 재무부

”러시아 증시하락세 당분간 지속할 수도 ”

사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제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3월 핵확산방지조약 위반을 이유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부과한 바 있으며 8월에는 이란, 북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안을 추가로 승인하기도 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역시 지난 2014년 크림반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해왔다.

러시아 정부도 미국의 이번 제재 조치에 대해 “추가 제재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 기업인들에 대한 해외 계좌 동결조치와 미국과의 거래 제한 등의 조치가 미칠 영향도 적을 것”이라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번 제재는 러시아 금융시장 전반에 깊은 파장을 남겼다. 러시아 10년물 국고채수익률은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일보다 0.19%포인트 상승한 7.25%까지 치솟았다. 외환시장에서 러시아 루블화도 달러 대비 가치가 하루만에 3.39% 급락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락 폭 기준으로는 2016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이었다.

▲ 달러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하루만에 3.39% 급락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출처=한국투자증권

이번 조치가 큰 충격을 남긴 것은 지난 1월 미국에서 발표한 '푸틴 리스트' 여파가 당시엔  크지 않았던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줄 기업으로 불린 이 리스트는 발표직 후 추가 제재조치로 이어지지 않아 러시아 증시에 큰 충격을 주진 않았었다. 이번 미국 정부 조치로 지난 1월부터 러시아 주식시장에 잠재해있던 불안요인이 기저효과를 일으키며 9일 증시에 강한 충격을 안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현구 KB증권 연구원은 “이번에 러시아 증시가 크게 흔들린 것은 당시 상승분이 이번에 되돌려졌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무역전쟁에 따른 자원 수요 둔화와 추가적인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경제제재와는 달리 이번 제재 수위가 높았던 점도 충격을 키웠다. 미국 재무부는 처음으로 제재 대상을 러시아 인사, 기업 뿐 아니라 이들과 거래하는 제3자까지 확대했다. 만약 서방의 은행이나 기업이 이번 제재 대상과 거래를 했을 경우 그들 역시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태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014년 이후 러시아 증시 약세 요인의 큰 줄기는 유가 급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였다. 올 초부터 유가가 상승하면서 러시아 증시는 양호한 흐름을 보였으나 서방 국가와의 사이가 악화되면서 경제 제재는 단기간에 해제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면서 “이들 관계가 크게 개선되거나 추가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없다면 러시아 증시의 반등세는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증시 영향은 크지 않을 듯”

러시아발(發) 충격으로 글로벌 증시 변동성은 커지고 있으나 한국 증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3월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 경계감과 미∙중 무역갈등 우려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증시가 크게 요동쳤으나 최근 갈등이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에 미국의 대중 관세부과 안건을 상정했다. WTO 분쟁해결절차가 개시되면 최대 1년 3개월 동안은 일방적인 제재는 불가능하다. 결국 G2의 무역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 상황이다. 이는 국내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달 들어 국내 이슈도 우리 증시에 긍정적인 모멘텀을 주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 해운 산업 재편,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정책 이슈가 겹치면서 한국 증시에 긍정적인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4월 중하순 개최되는 한∙중 경제 공동위에 대한 기대도 증시 상승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화 강세 및 글로벌 테크 업종의 매도세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 테크업종의 가격조정은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정부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가치주에 대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결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이번 달은 글로벌 경기지표가 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지만 국내 증시는 정책 모멘텀과 수급 모멘텀이 결합되며 상승 반전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