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기자 장영성기자] KDB산업은행이 노사가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합의를 도출하려하는 STX조선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2017년까지 13조원을 투입했던 산업은행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처럼 산업은행의 균형을 잃은 구조조정정책에 대해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돌봐야 할 국책은행으로서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인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10일 오전 STX조선 노사가 정해진 ‘데드라인’까지 자구계획안을 제출하지 못하자 곧바로 법정관리(회생절차)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STX조선 노조는 산업은행이 법정관리 입장을 밝히자 "산업은행이 데드라인을 넘기도록 유도했다"라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산은은 이날 새벽 "STX조선 노사합의가 애초 9일이라는 합의 시한을 넘겼다"며 보도자료를 내고 기다렸다는 듯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겠다고 입장을 굳혔다.

산은의 이 같은 결정은 ‘조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원칙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구조조정에 대해 노조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간 노조는 사측과 총 14번의 합의를 시도했지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STX조선 노조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자구계획안을 거부해왔다. STX조선 채권단은 그동안 자구계획안에서 75%의 인원감축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해왔다. 

이유 있는 노사 합의 지연

채권자인 산은이 회사에 요구한 인원 감축안은 애초 산업자원부가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된 컨설팅 보고서에 따른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STX조선의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를 넘어선다고 봤다.

산업은행은 앞서 성동조선 컨설팅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STX에 대해서도 그 내용과 산정근거를 밝히길 거부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기업 비밀이 포함됐다”고만 할 뿐이었다.

STX조선 노조는 "이처럼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따르라는 요구가 협상을 더디게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인건비의 감축요구가 어떤 근거에서 이뤄졌는지 알아야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노조원을 설득할 수 있는데, 무조건 인력감축을 요구하니 부당하다”며 “제한적으로 해당 부분이라도 발췌해 공개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높다는 주장에 대해 노조는 이미 과거 5차례 구조조정동안 계속 임금을 삭감해 왔다고 강변했다. 노조는 '양보 못하겠다`는 입장이 아니었다. 노조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조선업황을 고려해 상당기간 최저임금제 이하의 보수에 대해서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월 157만원의 급여조차 수용하겠다는 것.

노조는 10일 새벽, 고용 보장을 전제로 최저임금 선에서 채권단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회사측과 어렵게 합의했다. 노조 집행부는 노조원들에게 최저임금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산은의 법정관리 신청 발표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는 입장이다.

`데드라인` 자초한 정부와 산업은행

이와 관련, 산은은 상급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양을 연출하고 있다.  

산은은 법정관리 신청발표에 대해 “회생신청은 회사가 신청하는 것”이라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 최대 주주이면서 채권자인 산은이 회생신청자가 회사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산은은 이날 새벽 보도자료를 통해 회생신청을 위한 이사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자부 역시 산은의 STX조선 법정관리 신청 방침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핑퐁게임 하듯 하는 산은과 산자부의 태도가 현재 중형 조선소의 위기에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형 조선업의 위기는 그동안 감소한 세계 물동량과도 관계가 있지만 정부가 주도한 해양플랜트 사업의 몰락과도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해양플랜트 사업의 잇따른 실패가 금융권의 RG발급을 보수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도 있다. 안재원 전국금속노동조합 연구원장은 “채권단이 리스크에 겁을 먹고 RG발급에 인색하자 STX 조선 등 중형조선소의 수주량이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조선 금융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이런데도 노사가 어렵게 성사시킨 합의를 `시한 넘겼다`는 이유로 배척한 점을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STX조선 관계자는 “회사는 줄곧 수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RG발급을 해달라고 요구했고, 산은은 반대로 회사가 구조조정을 해야 RG를 발급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줄다리기를 이어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치권도 산은이 STX조선 노사 회생방안을 거부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희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열린 의원총회에서 “산업은행은 정신이 어디 있느냐”라면서 “산업을 살리는 국책은행으로서 소임을 다하려는 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노 대표는 “STX조선은 지난 5년 사이 전체 종업원이 3분의 1로 줄어든 상태로 이제 680명만 남았는데도, 산업은행은 180명만 남기고 500명을 잘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이제 STX조선 공장은 비정규직 공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는 청와대가 밝힌 `조선산업 장기 발전전력`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라면서 “산업은행의 태도 변화와 노사정 합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