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문주용 편집국장] 18세기 말 유럽을 묘사했던 찰스 디킨스의 말처럼, 지금 여기는 희망의 시대이고 절망의 시대인가.

누군가는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하고, 젊은 누군가는 미래가 절망적이라며 고개 떨군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나열하면 시계추마냥 미래는 희망과 절망은 극단으로 오간다. 우리에게 미래는 희망적인가. 반대로 절망적인가.

새해를 맞은 지 3개월이 지난 시점, 독설을 퍼붓던 북한과 미국이 어느 틈에 정상회담 테이블에 앉을 태세다. G2로 지구를 사이좋게 나눠먹을 듯하던 미국과 중국은 난데없이 무역전쟁에 돌입, 전운이 감돈다.

민주화되어가던 중국과 러시아는 어느 틈에 장기 독재권력의 불순한 기운이 퍼졌다. 반면, 극우의 길을 ‘안정적으로’ 걷던 일본의 아베 총리는 뜻밖에 가족비리로 낙마를 걱정하고 있다. 극적인 변화는 남한과 북한이었다. 대형 스포츠 행사를 십분 활용, 화해의 진앙지로 만들었다. 전쟁 대신 평화의 메시지를 든 손님들이 한반도에 모여들고 있다.

국내 상황도 정말 충격의 연속이다. 우리 사회에 가장 후진적 권위가 행사되던 곳, 문화예술계, 교육계에서 자행되던 성폭력 피해 사례가 철저히 까발려지고 있다. 정치권이 그렇게 후진적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구속됐고, 글로벌자동차 회사가 한국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상황이다. 불과 3개월이 지난 시점, 이 시대는 희망적인가, 절망적인가를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대 이슈들이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람? 역사의 전환을 훔쳐보는 젊은이들은 편의점 귀퉁이, 노래방 프런트, 지하 PC게임방에 처박혀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운다. 한반도의 평화, 성폭력 추방이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할 수 있나. 생존조차 버거운 현실인데.

1957년 10월 전승국 기분에 취해 흥청망청하던 미국의 젊은이도 단 하나의 사건으로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다. 체제 경쟁자였지만, 가소롭게 보이던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는 인류 최초 우주선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군사적으로 소련은 미국 본토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수 있는 실력을 과시했다. 과학과 교육면에서도 소련은 미국의 그것에 한참 앞섰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국토가 유린됐고, 한때 서방에 의해 고립됐던 소련이 전후 10년여 만에 과학기술 우위를 과시했다.

충격에 빠진 미국은 서둘러 교육체계를 확 바꾼다. 과학기술계의 건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미국은 ‘널널한’ 학습 방식대신 수학, 과학을 중시하고 시험평가도 강화했다. 하지만, 미국은 또 한 번 더 소련의 과학기술 앞에 굴욕을 당하게 된다.

1961년 4월 인류역사상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운 소련의 보스토크 1호가 지구 대기권을 벗어났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3년 전 대통령 직속기구인 항공우주국(NASA)을 띄웠지만, 우주탐험기술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극적인 전기를 마련한 이는 그해 1월 미국 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그해 5월 의회 연설에서 케네디는 “10년 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소련이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되돌아보는 것이었다면, 케네디는 지구를 벗어나 달(Moon)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인류를 태운 우주선을 쏘아(Shot)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구체적인 비전이었다. 이른바 문샷(MoonShot) 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들 아는 대로 케네디는 죽었지만, 아폴로 프로젝트는 활활 타올랐다. 1969년 7월 21일 마침내 미국은 아폴로11호의 닐 암스트롱 선장이 달에 첫 발을 디디게 했다.

체제경쟁에서 밀린다는 열패감도, ICBM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구체적 비전을 내세운 전략 아래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도 문샷(MoonShot) 선언이 필요하다. 인류를 달에 보내려는 구체성,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향하려는 외부지향성,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비전성을 갖춘 ‘문샷 전략’ 말이다.

지난 2월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전년보다 16.2% 늘어난 3조126억원의 예산을 활용해 직원 훈련을,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추가고용 장려금을, 쳥년내일채움공제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 주거복지, 부채 문제 해결 등 보조대책으로 종합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딱 한 가지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숫자는 많은데, 그림이 없다. 청년들이 인생을 걸게 하는 비전이 없다.

정부가 부족한 부분을 보조해주는 청년의 인생이 희망적일 것인가. 언제까지 그런 인생을 계속 끌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목표를 원하는 청년들을 향한 ‘문샷(Moonshot)’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동정하려 하지 말고, 비전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