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가끔 네이버 직원과 약속을 잡으며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묘한 경험을 합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카오톡을 열어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합니다. 당연히 누군가의 잘못도,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만 카카오톡에 중독된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네이버 노동조합이 출범했습니다. 가끔 노조 설립 이야기가 나왔으나 번번히 좌초되었던 직원들의 비원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

IT 노동자들의 노조 상급단체가 거의 없어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데다 전투력(?)도 높은 화학섬유식품노조에 들어갔다는 설명입니다. 소위 IT노조로 불리는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 있지만 가입된 회사가 별로 없습니다.

노조는 정식발족 후 4일 첫 활동 보고를 올렸습니다. 3일 사측과 공식 교섭 요청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의미있는 노조가 출범했기 때문에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활동 보고를 쭉 봤습니다.

순간 묘한 느낌이 듭니다. "내가 왜 네이버 노조의 활동 보고를 읽고있지?" 맞습니다. 네이버 노조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4일 활동보고를 통해 "언젠가 카카오 노조 소식은 라인으로 전달될까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아래에는 네이버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카카오 프로필이 쭉 나옵니다.

▲ 네이버 노조 플러스 친구 계정. 출처=갈무리

네이버 노조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통해 활동 보고를 하는 한편, 노조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단행하는 링크를 눌러봤습니다. 구글 설문지입니다. 심지어 가입은 구글 독스였습니다. 지난해 역차별 이슈의 중심에서 네이버와 구글이 나눈 결전의 기억이 생생한데, 정말 이상한 기분입니다. 네이버 노조가 자신들의 플랫폼을 활용하지 않고 경쟁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대목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여지를 남깁니다. 혹시 직원들이 네이버 라인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아니라면 사찰의 공포? 그건 당연하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카카오톡을 활용하든 구글을 이용하든 네이버 노조가 척박한 국내 IT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길 나섰습니다.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우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의 응원만큼 훌륭한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 IT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이티 깡패 페이스북 페이지]